등록 : 2007.09.20 19:58
수정 : 2007.09.20 19:58
[리뷰] 뮤지컬 ‘스위니 토드’
악마가 만든 작품처럼 잔혹하고 능란하다. 손드하임의 〈스위니 토드〉는 면도칼을 휘두르며 무대 위에 피비린내를 풍기지만 그 모든 과정이 어찌나 능란하게 전개되는지, 또 음악은 풍성하고 아름다운지 객석을 열광시키는 힘이 있다. 사실 작품 자체의 완성도도 있었지만 그 열광의 저변에는 엽기와 잔혹함에 열광하는 이 시대의 특성도 한몫하였을 것이다.
무대는 산업혁명이 진행 중인 19세기 런던. 기계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힘없는 민중들은 인간성마저 박탈당한 노예의 삶을 살고 있고, 마치 그를 웅변하듯 철골의 거대한 탑 같은 무대는 감옥을 연상시킨다. 〈스위니 토드〉는 그 으스스하고 어두운 런던을 배경 삼아 법관에게 아내를 빼앗기고 십여년을 유배당했던 불행한 이발사 스위니 토드의 복수극이다. 파괴된 휴머니즘, ‘이에는 이’를 부르는 복수의 논리는 결과적으로 얼마나 처참한가. 인간성을 상실한 스위니 토드는 복수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이유 없이 사람들을 죽이고, 아래층 하숙집 여주인과 짜고 시체로 고기 파이를 만들고, 자신의 아내마저 알아보지 못하고 단칼에 죽이며 결국엔 자신마저 살해당한다.
손드하임은 그 거대하고 끔찍한 이야기에 능란하게 음악을 연결시키고 주요한 인물마다 주제음을 부여하여 풍성한 화음을 만들어내면서, 선정적인 이야기를 예술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다. 가령 무반주의 서정적인 휘파람 소리, 비명 소리를 대체하는 금속성의 굉음, 새장에 갇힌 새처럼 높고 히스테릭한 딸의 노래, 인육으로 맛있는 파이를 만들면서 부르는 그로테스크하고 희극적인 이중창, 건조하고 박진감 있는 코러스들의 합창, 때론 복수를 꿈꾸느라 음울하고 때론 딸을 그리워하며 부르는 서정적인 살인자 스위니 토드의 다채로운 노래들 등등.
명성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규모나 음악의 현란함 탓인지 손드하임의 〈스위니 토드〉는 이번 공연이 국내 초연이다. 비록 이발관의 의자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긴박한 장면에서 웃음이 터지긴 했지만 캐나다 출신의 연출가 에이드리언 오스먼드는 비교적 이 복잡한 작품을 정확하게 이해했고 짜임새 있게 연출했다.
그러나 작품의 스타일에 대해서는 좀더 고민해야 하지 않았을까. 인육파이까지 만드는 비현실적인 잔혹한 소재나, 현란하고 극적인 음악을 고려한다면, 이 작품엔 그로테스크하고 양식화된 연극적 스타일이 일정부분 필요하다. 그러나 스위니 토드 역의 류정한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배우들이 사실적으로 접근해서 때론 음악과 유리된 채 평면적인 인상을 주기도 하고, 대사는 적고 대부분 레시터티브 형식으로 전개되는 작품의 속성상 가사 전달이 중요한데도 중창이나 합창에 가면 제대로 들리지 않는 것은 이 작품의 ‘옥에 티’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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