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11 19:25
수정 : 2007.10.1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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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균홍 조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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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균홍 조각전
화선지의 굵은 붓터치가 입체화한 느낌이랄까.
얇은 금속판을 잘게 잘라 이어 붙인 민균홍의 작품에서 선은 얇게 자른 것, 면은 넓게 자른 것일 뿐이다. 또 짧게 자르면 점선이고, 길게 구부리면 곡선이다. 어린아이가 색종이를 오려 풀로 이어 붙인 듯한 작품은 굳이 보여주고자 하는 대상도 없고 흥미를 자극하는 이야기나 화려한 테크닉도 없다. 작은 파편들은 빛을 받아들이고 되받아치면서 리듬감 있는 볼륨을 만들어낼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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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균홍 조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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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초기 추상조각가들이 인체나 자연을 단순화하는 과정을 거치는 데 비해 추상조각이 자리 잡은 뒤의 세대인 민균홍은 그 과정이 생략돼 있다. 철판이나 알루미늄판에서 직접 형상을 떠내 이어 붙여 가는 그의 작업은 식물이 성장하듯 작업과정에서 변모를 거듭하지만 수많은 스케치를 바탕으로 한다. 그의 스케치는 조각을 위한 밑그림이지만 독립적인 드로잉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뛰어나다. 작품에서 필선이 살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바로 그런 탓이다. 실제로 그의 작품에서 금속판들이 이어졌다 끊어졌다 하는 모양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붓의 움직임과 흔적이 그대로 살아 있음을 알 수 있다.
‘회화의 입체화’는 재료의 물성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작품이 된다는 조각계에서 돌연변이처럼 채색을 하는 것으로도 드러난다. 그가 색을 입히는 것은 대부분 알루미늄 작품. 철은 시간에 따라 녹이 슬면서 자연의 색을 입고 이어서 소멸하는 과정을 거쳐 친근한 반면, 상온에서 녹이 슬지 않는 알루미늄은 반짝거리는 차가움이 지속되어 부담스러웠던 것. 하지만 그가 택한 색깔은 철의 녹과 흡사한 것으로 최소화하고 있다. 알루미늄의 가볍고 다루기 편한 속성만 취했다고 할까.
이번에 김종영미술관(02-3217-6484)에서 11월8일까지 전시하는 신작 11점은 재료를 학대하지 않으면서 긴 여운을 주는 것들이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복잡한 생각 없이 상상의 날개를 펴게 만든다. 불혹을 거쳐 50대에 이른 동양 남성이 이룩한 명상의 세계. 그것이 좀 불편하다면 동양화풍의 추상화가 어떻게 입체조각으로 바뀌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다.
무심하게 이어 붙인 듯한 금속조각들이 사실은 무게중심까지 철저히 고려한 것으로 작품을 설치하는 데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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