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7.10.11 19:28
수정 : 2007.10.11 19:28
카롤린 칼송의 무용극 ‘두 개의 시선’
사람들은 한계와 왜곡을 알지 못한 채 자신이 인지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한다. 이를 두고 현실 너머의 상상을 보라고 권하는 카롤린 칼송의 솔로에서 ‘두 개의 시선’을 풀어내는 방식은 명료했다. 앞으로 비스듬히 기울인 반사판을 통해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무대 바닥을 보여 주는 것-한 곳으로 모아져야 할 시선을 분리하면서부터 새로운 지각은 시작된다. 그 안에서 칼송은 무대를 ‘입고’ 있었다. 흰 구름을 연상시키는 장막은 바닥으로부터 칼송의 몸으로 이어졌고 발이 보이지 않는 제한된 구조를 형성했다. 흰 장막 위로 영상은 형상을 드러냈고 이것이 다시 뒤에 매달린 반사판에 투사되었다. 구조의 구속 안에서 칼송은 격렬히 뛰거나 구르지 않고도 예측을 뛰어넘는 움직임을 만들어내며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바닥, 공간, 몸으로 구획되던 3면이 시작부터 전혀 다르게 재배치된 가운데 움직임은 시간의 다른 흐름을 가져오고 있었다. 그가 오랫동안 골몰했던 시간과 공간이 모종의 다른 형상으로 구현되며 그간의 노력이 성공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젊은 영상 그룹 일렉트로닉 섀도와의 공동작업은 작품이 지닌 다른 화제거리기도 했다. 그러나 〈두 개의 시선〉에서 칼송이 활용한 것은 공연 선전문구였던 현란한 기술이 아니었다. 무대에는 여느 안무자와 같이 영상과 프로젝터 무대 조명만을 썼다. 화려하되 세련된 무대는 ‘흰색은 빛을 반하고 검은 색은 빛을 먹으며 빛을 사용하면 반대 면에 그림자가 생긴다’, ‘필연성이 내러티브를 이끄는 원동력이다’와 같이 무대를 만드는 이라면 누구나 아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들을 견고한 태도와 섬세한 손길로 지켜낸 결과다. 이러한 칼송의 작업은 우리들에게 당분간 모범답안으로 제시될 것 같다. 우선 왜 자신의 작업에 영상을 써야 하는지도 모르는 무대와, 영상을 사용함으로써 다시 처리할 부분이 생긴다는 것도 책임지지 않는 무대에 대한 답이다. 이어 제작 환경의 제한에 불편함만을 호소했던 입장에도 해당하는 답이기도 하다. 호기심을 잃고 게을러진 자아에 이 이상의 처방 또한 없을 것이다.
칼송의 춤은 늘 그랬던 것처럼 ‘테크닉을 배제한 스타일’을 구사하며 무대와 일치해 즉흥을 막강하게 팽창시켜 동작과 에너지에 대해 마음껏 탐구하고 있었다. 발을 묻은 채, 손과 얼굴을 감싼 채, 긴 의상을 드리운 채, 칼송은 환갑을 한참 넘겼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게 천진하고 생생한 움직임을 구사했다. 춤과 무대, 의상의 완성도에 못미쳤던 음악과 음향은 칼송의 다음 과제로 남겨두도록 하자. 오늘은 이미 ‘있을 것 같지도 않은 곳(nowhere)’을 ‘지금 여기(now here)’로 만들었으니까.
이진아/문화칼럼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강사
wallbreaki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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