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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20 20:41 수정 : 2007.12.20 20:41

연극 ‘그 자식 사랑했네’

연극 ‘그 자식 사랑했네’

연애가 끝난 뒤 “그 자식 사랑했다”며 제삼자에게 털어놓는 정서는 어떤 것일까. 그것도 어둑한 술자리에서의 내밀한 고백이 아니라 학원에서 강의형식으로 진행되는 공개용 고백이라면?

아르코 극장이 송년 프로그램으로 준비한 창작극 <그 자식 사랑했네>는 명랑수박씨어터의 추민주가 쓰고 공연배달서비스간다의 이재준이 연출한 사랑에 대한 연극이다. 눈치 빠른 독자라면 이 정도에서 제목이나 극단 명칭만 듣고도 젊은 감각을 예감할 것이다.

맞다. 이 연극은 최근에 무서운 속도로 부상 중인 신세대 연극인들이 만든 작품이다. 신협이나 자유처럼 거대한 극단 명칭에 의지하지 않고 민주나 역사 같은 무거운 주제에 대한 강박 없이, 인스턴트 음식과 입시학원에 사춘기를 저당 잡혔으나 어떤 명분으로부터도 자유로운 뿌리 없는 세대의 연극. 솔직하고 재치 있고 자유로운, 그러나 때론 사적인 사랑 이야기를 공개 강의하듯 과시적이고 이기적일 정도로 쿨-신세대적 감수성!-해서 물가에 내놓은 아이 보듯 아슬아슬한 연극.

<그 자식 사랑했네>는 보습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2인극이다. 작품은 보습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지만 기성세대가 보기에는 그들이 가르치는 중학생들만큼이나 서툴고 어려보이는 젊은 두 주인공의 첫 만남부터 이별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여정을 보여준다.

첫 만남부터 이별까지의 이야기니 작품 서사는 꽤 방대한 듯하지만, 실제 연출한 과정은 스타카토만 존재하는 음악처럼 산뜻하고 강렬하다. 연출은 미닫이처럼 움직이는 흑판 하나에 백묵으로 낙서를 하며 15개에 달하는 긴 사랑의 여정을 재치 있게 연출하고 또 한 편에선 성애에 대한 묘사를 대담하게 연출하여 관객의 자극에 대한 강박적인 욕망을 충족시킨다. 작가는 사랑이 준 매혹과 감흥을 드러내면서도 연인들의 이기심과 유치함 역시 냉정하게 표현해서, 판에 박은 듯한 멜로물과는 다른 사랑의 연극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전 세대의 연극과 다른 이 솔직하고 재치 있는 연극이 매혹적이긴 하지만, 선생들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작품의 기본 구도나 노골적인 정서는 <연애의 목적>이라는 영화와 흡사한 지점이 있다. 기성세대의 연극과 다른 새로운 표현을 추구하는 젊은 연극인들이 자신들의 자양분을 영화에서 얻고 있는 것은 아닐까.

영상세대가 만드는 연극이니 그 영향력은 일정부분 불가피할 것이다. 그러나 광장의 예술인 연극은 영화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지점이 있다. 미세한 삶을 클로즈업할 수 있는 영화가 누군가의 삶을 엿보는 듯한 관음증을 유발시킨다면 그것이 불가능한 연극은 굵직한 본질에 대해서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 자식 사랑했네>의 농밀한 표현방식 역시 지나치게 관객의 관음증을 촉발시킨 것은 아닌지, 싱싱한 젊은 연극인들이 자신들의 연극성에 대해 한 번 고민해 주기 바란다.

김명화/연극평론가·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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