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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7.12.20 21:43 수정 : 2007.12.20 21:43

‘터키 참전용사 유가족 돕기’ 사진전 여는 이희수 교수

‘터키 참전용사 유가족 돕기’ 사진전 여는 이희수 교수

“부산 유엔묘지에 묻힌 터키병사의 늙은 아내와 유복자들의 한을 풀어주어야 합니다. 한국이 이제는 그럴 때가 됐다고 봅니다.”

한국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54·사진) 교수가 25일까지 토포하우스(02-734-7555)에서 ‘내가 사랑한 터키’ 사진전을 연다. 1983년부터 올해까지 25년간 100여 차례 터키를 다녀오면서 눈과 가슴에 담아온 5천통 이상의 사진 가운데 터키 사람과 풍광을 중심으로 54장을 골랐다. 이 교수는 터키에 관한 한 국내 최고 전문가. 터키와는 ‘한국인 최초’라는 몇 가지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첫 터키(이스탄불) 유학, 첫 박사 학위, 첫 현지 대학교수 등.

코라이 소원은 “아버지 묻힌 한국 가는 것”
부산 유엔묘지에 450여명…유족 45명 초청
한국인 첫 유학생이자 전문가 25년간 인연
“조건없는 형제애 이제는 우리가 답례해야”

19일 전시장에서 만난 그는 유학생 때인 1984년 아나톨리아의 에르주름 근처에서 마주친 목동 이야기를 했다. 목동은 길을 묻는 그에게 대뜸 자기 이름이 ‘코라이’라고 하더라는 것. 코라이는 ‘한국인’을 일컫은 터키 사투리. 아버지가 한국전 참전용사로 전사했으며 자신은 유복자로 태어나 홀어머니와 힘든 삶을 살아왔지만 한번도 한국을 잊은 적이 없다고 했다. 평생 소원은 한국에 가 그곳에 잠든 아버지의 영혼을 위로하는 것이지만 자기 형편으로는 꿈이라고….

“이 전시회는 터키군인이 한국에서 치른 희생과 다시 만나지 못한 목동 ‘코라이’에 마치는 작은 답례입니다.” 수익금으로 한국전 전사자 아내와 유복자를 한국에 초청하는 비용으로 쓸 예정이다. 100여명의 독지가들이 주머니돈을 털어 세 차례 45명을 초청해 한을 풀어주었다. 하지만 부산 묘지에 잠든 터키병사의 수는 450여구. “보잘 것 없지만 제가 성의를 보이면 다른 사람이나 기업의 후원을 얻기가 쉽지 않을까 합니다.”

그는 터키인들은 모두 코라이처럼 한국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중학 과정을 거친 터키인들은 한국인과 터키가 형제국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교과서에 터키인의 조상인 돌궐이 고구려와 인접해 있었던 사실을 기술하고 있거든요.”


이 교수는 한국전 당시 터키에서 벌어진 신학적 논쟁을 소개했다. 이슬람과 무관한 나라에 가서 사망했을 경우 자하드(성스런 죽음)가 되느냐의 여부가 첨예한 관심사였다. 자하드가 되어야 내세를 보장받을 수 있기 때문. 당시 종교지도자인 사이드 누르시가 ‘공산주의와의 전쟁’은 이슬람 교리와 합치한다는 유권해석을 내림으로써 젊은 터키병사 15000명이 파병됐고 그 가운데 천명 가까이 산화했다는 것이다. “당시 19~21살의 젊은이들은 전장으로 떠나기에 앞서 혼인을 하고 씨받이를 남겼어요.” 그 유복자들이 벌써 자기 나이와 비슷한 50대라고 덧붙였다.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이데올로기나 이해득실과 무관하게 조건없이 성원하는 나라가 있다는 것은 무척 행복한 일입니다.” 이 교수가 잡은 사진 속의 터키인들의 시선에는 형제나 친척을 바라보는 따스함이 담겼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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