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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박임순, 고정민, 한교화, 박기련, 이미경, 김단아씨. 장긍선 신부는 사진찍기를 사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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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콘’ 그리는 사람들
“물감이 굳으면 안 되니 잠깐 기다리세요.” 지난 6일 서울 중구 가톨릭출판사 5층 이콘연구소. 장긍선 신부는 제자가 그린 성령강림절 이콘에서 열두 사도들의 어두운 표정을 수정하고 있었다. 3기 제자 8명의 전시회를 앞둔 막판 마무리다. 팔레트의 안료가 떨어지자 비로소 돌아 앉았다. “이콘은 형상, 또는 모상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신앙의 대상, 성서와 교리의 내용을 가시화한 성화입니다. 초대교회 시절 예수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문맹자들에게 예수의 말씀을 생생하게 전달하려는 목적에서 시작됐지요.” 장 신부는 모스크바 상트페테르스부르크 총대주교청 직할 신학교에서 4년반 동안의 이콘과정을 이수한 국내 유일의 이콘 전문가. “세속적 요소가 섞일 것을 염려해 세속 그림과 구분되는 기준을 만들었고, 그 기준에 입각해 천년 이상을 전해 내려온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있어요.” 세속그림과 구별짓는 기준 엄격인물·배경·배열에 일정한 규칙
9일부터 명동성당서 전시회
이콘의 등장인물은 신앙의 대상인 하느님과, 예수, 공경의 대상인 성모와 성인들. 산, 나무 등 배경은 상징적으로 최소화했다. “옷 색깔, 위치, 배열 등에 원칙이 있어요. 예컨대 베드로는 노랑색과 짙은 쑥색의 옷을 입고 손에는 열쇠를 들고 있어요. 바오로는 짙은 갈색과 남청색 옷에다 대머리고 한손에 칼을 들고 있고요. 지상의 성모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옷을 입고 예수의 오른쪽에 배치되는 식이죠.” 그림은 템페라 기법 즉, 주사(빨강), 황토(노랑), 청금석(파랑) 등 천연염료를 곱게 갈아 유정란 생달걀 노른자와 섞고 백포도주 또는 식초를 가미해서 그린다. 이렇게 하면 엷고 투명한 물감층이 곱게 먹어 갈라지거나 떨어지지 않고 변색되지 않는다. 교화적 내용과 상징적 표현기법, 그리고 천연재료의 이용 등이 불교의 탱화를 빼닮았다는 설명이다. 선긋기, 밑그림 스케치, 채색 등 기초과정을 마치고 지난해 여름부터 그리기 시작한 3기 연수자들의 주제는 축일. 수태고지, 예수의 탄생, 예루살렘 입성, 십자가 처형, 부활, 승천 등을 내용으로 하고 지성소 칸막이용으로 쓰인다. “서방교회의 그림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세속화된 반면 그리스와 러시아 정교회의 이콘에는 로마교회가 동-서로 갈라지기 이전의 전통과 규칙이 그대로 살아 있어요.” 장 신부는 카톨릭에서도 중요성을 인식해 함께 유지·보존하기로 공의회 차원에서 결의했다고 전했다. 이번 작품들은 파주 통일동산 내의 통일기원성당에 걸릴 예정이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 3기는 모두 그림을 전공한 사람들. 하지만 힘을 빼고 선을 긋는 것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전했다. 고정민씨는 그림에는 두 가지 물감 즉 안료와 기도가 들어간다면서 “그림을 쓰는 동안” 즐거웠으며 신앙에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임 루시아 수녀와 고정민씨를 빼면 박임순, 박기련, 한교화, 이미경, 김단아, 송정명씨 등 모두 주부인 점이 특징. 대구에서 매주 올라온다는 ‘왕언니’ 박임순씨는 시간과 공임이 많이 들어 남편의 외조가 없었다면 배우지 못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근법을 무시한 채 시점을 이동해가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옛스런 방식이 오히려 보는 이를 경건하게 만듭니다.”(김단아씨) 전시회는 명동성당의 평화화랑(02-727-2336)에서 9일부터 15일까지 연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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