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1.17 19:39
수정 : 2008.01.17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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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경의 ‘트랜스레이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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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경의 ‘트랜스레이션’전
저것들이 정녕 비누란 말인가?
신미경의 ‘트랜스레이션’(2월3일까지) 전시회가 열리는 몽인아트센터(02-736-1446~8)에 가면 눈이 휘둥그래진다. 현대적인 작품을 전시하던 몽인이 도자기 박물관으로 변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곳에 전시된 도자기 30여점이 흙으로 구운 게 아니라 비누라니 더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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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경의 ‘트랜스레이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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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누는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재료다. 그러나, 쉽게 닳아 없어지는 특성이 있어 시간의 흐름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이미지와 실재의 구분을 두드러지게 하는 향기가 있다는 점에서 오랜 시간에 걸친 문화의 이동과 전이, 즉 번역의 문제를 풀어내기에 적합한 재료다.”
작가가 노리는 것은 두 가지. 비누로 만든 도자기, 비누가 놓인 박물관 등 두 가지 측면에서 가치와 맥락의 전복을 보여주자는 속셈이다.
작가는 유백색 달항아리, 청화 백자, 돋을새김 중국 용항아리, 상감 고려청자를 실물 그대로 재현했다. 비누로. 작업 초기에는 겉모양만 그렇게 만들었지만 뒤로 가면서 속까지 비워 완벽한 용기를 만들었다. 도자기 하면 으레 흙으로 구워 만든 것이라고 여겨온 관객한테 비누 그릇은 왜 도자기가 아니라고 생각하느냐, 고 되묻는다. 굳고 무르고, 뜨거운 것을 담을 수 있고 없고에서 차이가 있을 뿐 ‘용기’인 점에서 모두 진품임을 주장한다. 게다가 작가는 뜻밖의 재질 비누로써 용기 자체가 시간성과 온도성의 존재임을 일깨워준다.
그렇다면 ‘비누 도자기’는 박물관에 놓일 수 없을까. 박제 전시관인 박물관에서는 오로지 긴 시간에 주목할 뿐 상대적으로 짧은 동안의 존재는 들이지 않는다. 작가는 스스로 전시장을 박물관처럼 만듦으로써 가짜 박물관에 가짜 도자기를 전시한다. 하지만 비누 도자기는 진짜 용기이고, 가짜 박물관 역시 한시성만 제외하면 박물관과 다르지 않다. 그 점에서 ‘가짜 박물관 속 비누도자기’는 ‘박물관의 도자기’와 다르지 않다.
전시장에는 비누불상도 여러 점 전시돼 있다. 어떤 것은 맨들맨들 얼굴 윤곽이 없고 어떤 것은 머리 자체가 반쯤이나 없다. “비누입니다. 사용하십시오”라는 메모와 함께 공중화장실에 두어 일정기간 일반인들이 사용하게 한 뒤 거둬온 것들이다. 애초 손을 안 댄 것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 일단 손을 대면서 푹 닳은 것까지 사람들의 행태와 시간의 경과를 동시에 보여주는 일종의 공공 설치미술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고유한 장소성과 시간성을 지닌 유물이 시간과 장소을 옮기면서 생겨나는 시차와 낙차에 주목해 온 작가는 관객의 문화적 배경과 이해도에 따라 자신의 작업이 이해되는 여러 방식을 즐긴다. 전시장에서의 질문과 응답을 통해서. 신문기사 역시 작가의 커다란 번역작업 가운데 하나다.
임종업 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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