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2.14 19:31
수정 : 2008.02.14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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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어라운드 더 클락’이 삽입된 영화 <폭력교실>(원제 <블랙보드 정글>)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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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노래] ⑮ 빌 헤일리의 ‘록 어라운드 더 클락’(1954년) 상
로큰롤이라는 명칭을 누가, 언제 처음 사용했는지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애초 뒷골목을 떠돌던 은어가 시간의 검열을 통과하며 양성화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이름을 대중에게 널리 알린 최초의 인물이 앨런 프리드였다는 사실이다. 클리블랜드의 라디오방송 디제이였던 그는 전향적인 태도로 흑인음악을 백인대중에게 소개한 선구적 인물이었는데, 리듬 앤 블루스에 담긴 인종적 선입견을 누그러뜨릴 대안으로 로큰롤이라는 표현을 차용했다. 1951년, ‘문독 로큰롤 파티’로 개명한 그의 프로그램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로큰롤이라는 명칭 또한 폭넓게 인지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앨런 프리드는 또한 최초의 대규모 록 콘서트를 기획하고 개최한 인물이기도 했다. 1952년 3월 21일, 일만 석 규모의 ‘클리블랜드 아레나’에서 펼쳐진 <문독 코러네이션 볼>에는 흑백을 아우르는 2만5천 명의 관객이 몰려들었는데 제한된 좌석을 차지하려는 관객들의 몸싸움으로 폭동에 가까운 혼란이 야기됐다. 출입구와 유리창이 모조리 파손되는 상황에서, 경찰의 제지에 따라 공연은 단 한 곡만을 연주하고 막을 내려야 했지만 그 여운은 길었다. 비평가 마크 페이트리스는 당시의 해프닝이 “사상 최초로 로큰롤을 신문 헤드라인에 올린” 사건이라고 평했다. 하지만 더욱 주목할 사실은 그런 야단법석조차도, 결과적으로, 다가올 충격에 비하면 가벼운 기시감 정도에 불과했다는 점이다. 불과 3년 후, 빌 헤일리의 ‘록 어라운드 더 클락’이 불러일으킨 사회적 반응은 전대미문인 동시에 전세계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빌 헤일리의 ‘록 어라운드…’는 1955년 로큰롤로서 사상 최초로 팝 싱글 차트 1위에 오른 곡이다. 본래 1954년 녹음되었으나 당시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잊혀졌던 이 노래는 이듬해 3월 개봉한 영화 <폭력교실(원제는 <블랙보드 정글>)>의 시작 장면에 삽입되면서 극적인 반전을 이뤄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선풍을 일으킨 영화와 함께 인기가 동반상승한 것이다. 그 결과 이 곡은 초여름 무렵 차트 정상을 정복했고, 궁극적으로는 로큰롤 시대의 본격 개막을 알리는 이정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록 어라운드…>와 <폭력교실>이 만들어낸 시너지가 괄목할 만한 것은 로큰롤과 할리우드의 결합을 통해 청소년 하위문화를 수면 위로 분출시킨 지각변동이었다는 점에 있다.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청소년’이라는 개념이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된 것이다. 그 전조는 진작부터 드러나고 있었다. 제이디 샐린저의 소설 <호밀밭의 파수꾼>(1951)은 사춘기 소년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보여주었고, 말론 브랜도 주연의 영화 <와일드 원>(1954)은 청소년 갱단의 폭력을 화두로 삼았다. <폭력교실>보다 7개월 뒤에 공개된 제임스 딘 주연의 <이유 없는 반항> 또한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다루어 거대한 성공을 거뒀는데, 그 제목은 심리학자 로버트 린드너가 이미 1944년에 발간한 해당 소재의 동명 저서에서 빌어온 것이었다.
로큰롤의 등장과 성공은 청소년의 급부상이 가져온 사회변화 과정의 산물이었다. 바야흐로 전세계의 홀든 콜필드(<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들은 이제 ‘동세대의 송가’를 갖게 된 것이다. (이 내용은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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