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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테 요지가 20일 자신의 연극 <블라인드 터치>가 공연 중인 산울림 소극장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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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터치’ 원작자 사카테 요지 서울에
일본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사카테 요지(46·일본극작가협회 회장)는 사회성 짙은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일본이 감추고 싶은 치부를 드러내는 사회참여적인 연극인이다. 일본에서도 ‘사회파 연극인’으로 불리는 그가 홍대 앞 산울림 소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 자신의 원작 연극 <블라인드 터치>(김광보 연출. 2월12일~3월16일)를 보려고 20일 한국을 방문했다. “처음 이 작품을 발표할 때부터 일본보다는 외국에서 공연되기를 바랐는데 한국에서 공연되어서 너무 고맙다. 일본 배우들과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지만 한국 배우들은 자기의 의지대로 연기하는 것 같다.” 미군기지 반대시위로 수감된 남자와옥중결혼한 여자의 실화 바탕한 연극
“한국공연서 작품 사회성 조명됐으면” 그는 이날 저녁 공연 뒤 <한겨레> 인터뷰에서 “윤소정씨와 이남희씨가 튼튼한 연기로 남녀간의 사랑이야기를 뛰어넘어 작가가 의도했던 것을 잘 나타내 주어서 고맙다”고 밝혔다. 사카테 요지는 전후 일본의 사회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83년에 극단 린코군을 창단해 <신들 나라의 수도> <다락방> 등 6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해왔다. 한국에 초연된 <블라인드 터치>는 그의 극단 린코군이 2002년 일본에서 공연한 작품으로, 70년대 일본 오키나와 미군기지 반대 시위에 참가했다가 교도소에서 28년 복역한 남자와 옥중결혼한 여자의 실화를 다뤘다. 연극은 남자의 출옥 뒤 부부생활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는 “80년대 운동권이었던 한 부부를 만나 작품을 쓰게 됐다”며 “앞으로도 억울하게 갇혀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처음 발표했을 때 일본 평단에서 반미 같은 내재된 사회문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단순히 사랑이야기로 보는 시각이 대부분이었다”면서 “일본보다는 미군문제가 민감한 한국에서 작품을 더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일본은 ‘숨기는 사회’라고 주장한다. 정치범도 있고, 억울한 죄로 투옥된 사람도 있고, 여전히 옥살이를 강요당하는 사람도 있지만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숨긴다’는 비열함은 이 나라가 전 세기 전쟁에 대한 ‘전쟁책임’을 숨기는 것과도 상통한다. 차별의식을, 소심함을, 이기적인 거만함을 숨겨왔다”면서 그 자신은 “일본의 이런 ‘숨기는’ 문화를 증오한다”고 말했다. 그는 <블라인드 터치> 외에도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소재로 한 자신의 연극 3편을 더 소개했다. 일본 천황이 주재하는 국체의 오키나와 개최를 반대해 일본국기를 불태운 어느 운동가의 이야기를 다룬 <바다의 비등점>, 오키나와 미군부대의 우유공장 폐쇄로 일본인 노동자들의 집단해고를 다룬 <오키나와 우유공장의 마지막>, 오키나와에 사는 원폭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피가돈 도깨비> 등 모두 실제 사건을 다룬 작품들이다. 그는 “<바다의 비등점>은 신국립극장 개관 기념작으로 준비되다가 일본 국기를 불태운 장면이 나온다는 이유로 공연되지 못했다”고 귀띔했다. 그러면서 “일본 연극계에서도 ‘사회파 연극인’으로 <도쿄노트>의 작가 히라타 오라자가 있지만, 자신처럼 연극을 통해 일본의 사회적인 문제를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는 작가는 거의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올해 김광보 연출가와 함께 일본과 이라크, 뉴욕 센트럴 파크, 캄보디아 등 전 세계의 여러 지역을 배경으로 ‘지뢰’ 문제를 주제로 한 연극 <오뚝이가 자빠졌다>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지만 지뢰라는 부정적인 물건으로 세계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며 “관객도 단순히 가벼운 작품뿐만 아니라 무거운 작품을 보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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