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8.03.20 21:24
수정 : 2008.03.20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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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니 도니건의 〈록 아일랜드 라인〉(195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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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노래] 로니 도니건의 〈록 아일랜드 라인〉(1955년)
로니 도니건의 <록 아일랜드 라인>(1955년)
영국에 있어 2차 세계대전 승전국의 지위는 허울뿐이었다. 패전국 독일과 일본이 눈부신 경제성장을 시작한 반면,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 불렸던 대영제국의 하늘에는 노을이 물들고 있었다. 시대의 표정은, 윈스턴 처칠의 아기 같은 미소가 아니라, 당대 존 오스본의 희곡 제목처럼 “성난 얼굴로 돌아보”는 것이었다.
문화의 영역이라고 다를 게 없었다. 이미 영국적 전통이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미국화(Americanization) 현상이 그 자리를 대체했다. 윌리엄 휴이의 소설과 그것을 영화화한 줄리 앤드루스 주연의 <아메리카나이제이션 오브 에밀리>(1964)는 미국화의 영향이 물질적인 면에 국한하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사회학자 앤드류 케인은 “50~60년대의 영국 대중문화에 대한 어떤 논의도 반드시 미국화의 문제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썼다. 그리고 “그 같은 추이의 핵심 촉매는 로큰롤의 등장”에 있다고 했다.
세계대전 당시부터 5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영국 대중음악의 상황은 ‘1920년대의 미국’에 머물러 있었다. 스탠더드 팝과 뉴올리언스 재즈가 대세를 장악하고 있던 보수적 영국 사회에는 리듬 앤 블루스나 로큰롤이 발붙일 여지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것을 갈망하는 청소년들의 욕구가 상승하면서 문화적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마침내는 기성의 통제도 한계에 다다랐다. 이런 갈등 국면에 절충적 타협점을 제시하며 등장한 인물이 로니 도니건이었다. 재즈 밴드의 멤버였던 그는 기성세대에게는 안전해 보이고 청소년들에게는 새로워 보이는 음악적 출구를 선보임으로써 모두의 환영을 받았다. 스키플이다.
스키플은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아마추어적 방식에서 출발한 음악이다. 기타와 밴조에 더해, 빨래판으로 만든 타악기와 나무쟁반으로 만든 베이스와 담배상자로 만든 피들 따위의 원시적 악기 편성이 전통이었다. 그것 역시도 원류는 미국이었지만 로니 도니건(1931~2002)은 변형을 꾀했다. 로큰롤의 에너지와 속도감을 접목하여 미국에서와는 다른 양상으로 블루스와 컨트리의 현대화에 접근했던 것이다. 레드벨리가 불러 유명해진 곡을 스키플로 변형한 <록 아일랜드 라인>은 그 최초의 시도였고 최대의 히트가 되었다.
<록 아일랜드 라인>은 영국 대중음악사의 획기적인 전환점이었다. 팝 차트 1위에 오른 이 곡은 데뷔작이면서 골드 레코드 판매량을 기록한 영국 최초의 사례였으며, 미국 차트 톱텐에 진입한 최초의 영국노래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의미는 그것이 몰고 온 스키플 열풍이 대중음악 창작의 저변을 넓혔다는 사실에 있다. 단순하지만 명쾌하고, 경박하지만 경쾌한 그 스타일은 누구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는 점에서 “스스로 하라”는 펑크 에토스의 선현이었다고 할 만한 것이다. 그래서 비평가 이언 체임버스는 스키플이, 당시 대두하기 시작한 “여러 가지 음악적 가능성을 보다 대중적이고 접근이 용이한 형식으로 전화시켰다”고 평했다. 실제로 당시 영국 전역에서는 스키플 밴드 결성 붐이 일었다. 그 밴드들 가운데는 리버풀 출신의 ‘쿼리멘’도 끼어 있었는데, 그 멤버 중 세 명은 뒷날 비틀스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졌다.
박은석/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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