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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씨의 작품 <오라리 사건과 메이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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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4·3평화기념관, 보수단체 색깔공세에 ‘신음’
김대중 ‘오라리…’ 베니어판으로 막아 버려
박불똥 ‘행방불명’은 일부가려…수정요구도
화해와 상생의 취지로 세운 ‘제주4·3평화기념관’이 최근 문을 열자마자 전시작품의 이념 시비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지난달 28일 제주시 봉개동 제주4·3평화공원 안에 신축 개관한 4·3평화기념관은 상설 전시장에 4·3 관련 사료와 함께 미술작가 열한명의 작품 12개를 전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일부 작품에 대해 보수 단체 등에서 내용을 문제 삼아, 한 작품은 전시를 못하고 또 다른 작품은 일부를 가린 채 전시하는 비정상적 상황이 벌어졌다.
■ 감쪽같이 사라지고 가려졌다
문제가 된 작품은 김대중씨의 <오라리 사건과 제주 메이데이>와 박불똥씨의 설치작품 <행방불명>. 김씨의 그림은 전체 6개관 중 3관 ‘바람타는 섬’에서 ‘미군정, 강경방침으로 선회’라는 패널설명 맞은 편 벽에 설치되었으나, 현재는 베니어판으로 감쪽같이 가려진 채 텅 빈 벽으로 남아 있다. 이 작품은 4·3이 발발한 1949년 5월1일 발생한 오라리 마을 방화사건을 무장대의 소행으로 기록한 미군 쪽 영상자료는 미군 쪽에서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으로 방화사건은 군경 쪽에서 일으킨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씨의 설치작품은 4·3의 폭력 진압 배후에는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내용으로, 작품의 한가운데 콜라주된 이 대통령의 일러스트가 검은 판으로 가려져 있다. 또 설치작품의 측면 벽에 비추게 돼 있는 이승만 대통령의 제주도 방문 빔 영상은 아예 꺼놓고 있다.
전시와 관리 책임을 맡은 4·3사업소 진창섭 소장은 “정부에서 채택한 공식 진상보고서와 다른 내용이 포함돼 있어 수정 의뢰한 상황”이라며 “관에서 운영하는 기념관인 만큼 오해의 소지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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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을 베니어판으로 가려버려 빈 벽처럼 보이는 전시장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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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 개관에 앞서 3월 말에 집중된 보수 성향 단체들의 반발이 빌미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재향군인회와 뉴라이트전국연합 등 90여 개 보수단체로 구성된 국가정체성국민협의회는 “평화기념관이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서 서술된, 날조·왜곡된 내용을 근거로 전시물을 제작하면서 남로당 폭도들의 만행을 축소·은폐하는 등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뉴라이트 쪽은 또 대안교과서를 통해 4·3사건을 “남로당이 일으킨 무장반란, 북한 김일성의 국토완정(완전정복)론 노선에 따라 일어난 것”으로 기술하고 정부의 공식보고서조차 날조된 것으로 몰며 기념관 자체를 문제 삼고 있다. 애초 기념관 전시방식에 대한 민·관 합의가 일부 틀어진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4·3은 60년 동안 방치한 탓에 사료와 유물이 대부분 멸실돼 기념관을 꾸릴 소재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민·관은 보완책으로 유족들의 증언영상과 함께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기로 합의했다. 작품이 사료로 밝힐 수 없는 역사의 진실을 말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한 것이다. 문제는 작가의 상상력이 들어간 만큼 작품은 정밀함을 요구하는 사료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기념관 전시·기획팀의 민간 쪽 전문위원인 박경훈씨는 “오라리 사건처럼 미국이 배후임이 정황적으로 확실하지만 입증할 사료가 없는 부분을 만화로 커버하는 것이 옳다고 자연스럽게 합의했지만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사정이 달라진 것 같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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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불똥씨의 설치작품<행방불명>과 문제가 된 이승만 전대통령 그림을 확대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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