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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역전 옹벽에 설치된 벽화들. 왼쪽부터 이경희, 서용선, 앤디 탐슨, 정일영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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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 없이 열린 공간…근대사 ‘옹이’ 남아
석탄산업 예술로 기록…7년째 문화운동
지난 16일. 해바라기 축제가 한창인 강원도 태백시 구와우마을 고원자생식물원. 5만여 평 노랑바다 한켠에 세워진 ‘전시공간 할1’과 ‘할2’에서는 김태옥 회화전, 이경희 조각전이 각각 열리고 있었다.
“인사동, 사간동, 청담동은 예술가, 수집가들끼리의 닫힌 공간입니다. 끼리끼리의 유희는 생명력이 없다고 봅니다. 이곳은 축제에 온 일반인과 지역주민 등 길들여지지 않은 눈을 가진 사람들을 관객으로 하는 열린 공간입니다. 그들과의 교감을 통해 작가는 새로운 힘을 얻고, 작품은 본연의 생명력을 회복하게 되지요.”
지난 5월 인사동에서 전시를 연 바 있는 이경희 작가(한국디지털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이곳에서의 전시는 성격이 무척 다르다고 말했다. 8년 만에 다시 붓을 잡은 김태옥 작가는 이번 전시가 앞으로의 작품에 영향을 줄 것 같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할아텍(할 예술과 기술)의 최고참 회원. 할아텍은 2001년 서용선, 이경희, 류장복 작가에 의해 만들어진 비정형 비법인 단체. 이들은 2002년 우연히 이곳 태백시 철암을 알게 된 뒤 ‘철암 그리기’라는 이름으로 매월 셋쨋주 정기적으로 철암을 찾고 있다. 작가마다 자신의 장르로 철암 석탄산업 문화를 기록하는 작업을 해오기를 6년여, 모두 83차례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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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암 상가건물 벽에 그린 벽화, 배석빈, 장성아, 이혜인씨의 공동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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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자생식물원 해바라기밭(위)과 그곳에서 조각전을 연 이경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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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일군의 건축학자들이 몰려와 ‘빌리지움’을 꿈꿨다. 도시 자체를 완전히 보존하여 박물관으로 만들자는 것. 선탄시설은 물론, 철암천에 다릿발을 세워 걸터앉은 상가, 궁둥이 걸칠 만한 땅이라면 모조리 들어앉은 게딱지 집들을 보존하여 관광자원화한다는 계획으로 집 다섯 채에서 시범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당장 개발과 보상을 원하는 주민들, 그리고 이들의 요구를 외면할 수 없는 공무원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2년 만에 손을 뗐다. “곧 나가떨어지겠거니” 하던 또 다른 서울내기들이 7년째 꾸준히 드나들면서 주민들과 공무원들은 이들을 선탄장과 같은 지표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우린 체계적이지도 않고 경영 마인드도 없어요. 하지만 이곳의 근대 산업시설을 보존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활동은 현지인들과 공감하기 위한 통로를 만들어가는 과정입니다.” 서용선 교수의 말이다. 철암역 앞 맞은 편 천변상가들은 도로 확장을 위해 하나 둘 뜯겨나가고 있다. 된장찌개를 시켜먹던 역전 ‘신토불이’ 식당도 문을 닫았다. 이들이 한때 입주 작업장을 꿈꾸던 삼방동 집도 허물어져 옥수수밭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난 겨울, 스케치를 하던 회원에게 주민 한명이 다가왔더란다. 한참을 등 뒤로 들여다보던 그가 하는 말. “추운데 여기서 뭐 하슈?” 강원도 사람 특유의 이심전심으로 통했다는 증거로 회자되는 얘기다. 태백문화원에서는 할아텍과 함께 함태광업소 자리의 탄광체험관을 작가들의 작업장으로 꾸밀 계획이다. 한 공무원은 할아텍을 두고 “철암을 위해 하늘에서 떨군 사람들 같다”고 말했다. 철암/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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