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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18 18:37 수정 : 2008.11.18 18:55

몸짓에 생명 불어넣은 열연
마흔 넘은 나이 잊은 예술혼

발레스타 강수진의 춤은 깊고도 깊었다. 17일 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이 강수진 주연으로 펼친 발레극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가 진정 대가로 인정받는 이유를 실감시켜 주었다. ‘줄리엣’ 강수진은 어려운 춤동작이 아니라, 지극히 부드러우면서도 자연스럽게 감정을 전달하는 매혹적 ‘표현’으로 관객을 움직였다.

셰익스피어 원작의 이 명작은 원래 여러 안무가들의 버전이 있는데, 이번에 오른 거장 존 크랭코의 안무 버전이 가장 예술성이 뛰어나다고 꼽힌다. 그래서 장 크리스토프 마이요를 비롯한 여러 후배 안무가들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안무할 때마다 극중에서 크랭코에게 헌사하는 오마주를 집어넣곤 한다. 관객들은 17일 그 원전을 강수진의 속깊은 춤으로 감상한 셈이다.

무대에 오른 이번 작품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초연한 러시아의 명가 키로프, 볼쇼이발레단보다도 장점이 커 보였다. 일례로 1막에 나온 캐플릿 가문의 무도회 장면 군무는 무척 권위적이면서도 장엄했다. 검고 무거운 의상으로 치장한 무용수들은 많은 동작을 사용하지 않고 간단한 스텝만으로도 캐플릿 가문의 분위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반면 2막에 등장하는 몬테규 가문의 춤은 이와는 상반된 이미지였다. 광대가 등장하고 원색의 의상에 동작이 요란스럽다. 가볍고 밝으면서도 격식이 없다. 이런 춤을 통해 안무가는 두 집안의 상반된 분위기를 표면에 띄우면서, 물과 기름 같은 두 가문의 대립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 유명한 발코니의 구애 장면과 침실 장면, 마지막 줄리엣의 무덤 장면 등은 두 주인공의 심리 상태를 극명하게 잘 보여주었다. 문학에서 언어 표현 이상으로 몸짓과 표정만으로 모든 상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효과를 극대화하는 데 무용수들의 뛰어난 기량과 예술혼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강수진의 진가는 바로 그 부분에서 빛났다. 세계적인 발레리나답게 그 장면에서 요구되는 모든 것을 훌륭하게 해냈다. 강수진의 춤은 단지 발레가 많이 돌고 높이 뛰어 남들이 감히 발휘하지 못하는 고난도의 기량만으로 박수를 받는 것이 아님을 웅변했다. 깊은 표현을 통해 어떻게 하면 감정을 생생하게 전달하며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지 몸소 보여주었다. 발레가 단순한 팔다리운동이 아니라, 움직임에 생명을 불어넣어 언어를 뛰어넘는 표현수단으로 승격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셈이다. 마흔이 넘은 나이는 열연에 거의 걸림돌이 되지 못했고, 출중한 테크닉과 파워를 지닌 파트너 또한 강수진의 성숙한 표현을 도드라지게 뒷받침해주었다.

초연 뒤 40년이 넘어 고전으로 자리잡기 시작한 명작을 서울에서 볼 수 있어 기뻤다. 하지만 프로코피에프의 명곡들을 들려준 반주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안무를 충분히 뒷받침할 만큼 보강되지 못했다는 느낌도 남는다.

박성혜/무용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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