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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11.30 19:11 수정 : 2008.11.30 20:29

발렌티나 리시차

발렌티나 리시차, 오는 4일 서울시향과 협연

아르헤리치와 비교 말라
피아노 연주에 남녀없어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 녹음 도전하고싶어

그의 피아노 연주는 매우 빠르고 강하다. 그가 지난 1998년 5월12일 서울에서 처음 가진 내한 독주회에서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소나타 7번>과 리스트 <스페니쉬 랩소디> 등 난곡을 거침없이 해치워 버리자 한 피아니스트는 길게 탄식했다. “괴물이다. 어떻게 저렇게 빠르고 강하게 연주할 수 있지? 피아노 칠 맛 안 난다.”

이 금발미녀는 어지간한 기교파 피아니스트들도 꺼리는 난곡을 엄청난 힘과 무서운 속도로 몰아치며 듣는 이를 압도한다. 그런 그에게는 ‘제2의 아르헤리치’ ‘악마의 기교’ ‘피아노의 파가니니’ ‘리스트의 재래’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닌다.

미국 언론들이 ‘건반 위의 마녀’ ‘피아노 검투사’로 부르는 발렌티나 리시차(32)가 오는 12월4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선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러시아 명곡 시리즈’ 4번째 프로그램에 초청받았다. 2000년 12월31일 예술의전당 송년 제야음악회에서 금난새씨가 지휘하는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협연한 이후 8년 만이다.

“나를 마르타 아르헤리치와 비교하는 것은 솔직히 유쾌하지는 않다. 내가 그보다 낫다거나 못하다라는 문제가 아니다. 그런 비교에는 내가 여성 피아니스트로서 이 정도면 괜찮다는 함축적 의미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데는 남자, 여자의 범주가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음악은 스포츠가 아니잖으냐.”

한국 연주회를 앞두고 미국에 머물고 있는 그를 이메일로 미리 만났다. 그는 ‘제2의 아르헤리치’라는 평가에 대해 “나는 누군가가 나의 연주를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나 에밀 길렐스, 또는 빌헬름 박하우스와 비교할 때 훨씬 더 기쁘다. 그것은 정말 칭찬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연주회에서 베를린 필하모닉,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 비엔나 심포니 등을 지휘한 제임스 저드(뉴질랜드 심포니 음악감독)와 협연으로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가단조>를 들려준다.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이 최근 상대적으로 덜 인기있는 레퍼토리가 된 까닭은 아마 기교적으로 쉽다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 같다. 쉬운 작품이어서 대부분의 학생이 즐겨 연주한다. 따라서 제아무리 빠르고 크게 연주한다 하더라고 피아니스트로서 얻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렇지만 진짜 어려운 것은 음악적인 관점이다. 지나친 비애감이나 과다한 감상이 아니라 얼마만큼 정직하게 연주하느냐가 관건이다.”

그는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지난해까지 한 번도 연주한 적이 없었지만 올 시즌에만 벌써 10번을 연주했다.”라면서 “감정적으로 균형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작품이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 남은 인생 동안 연주하고 싶은 작품은 의심의 여지없이 브람스의 <피아노 협주곡 2번>과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 5번>이나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전곡”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지휘자 제임스 저드와 만나 오랫동안 함께했던 인연도 들려주었다. 그가 미국 마이애미에서 살 때 플로리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던 제임스 저드를 만났으며, 2004년 뉴질랜드 투어를 함께했던 게 마지막인 것 같다고 기억했다.

“언제나 그와 한 무대에 서는 것이 즐거웠다. 우리는 바흐부터 바르토크에 이르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연주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는 마이애미에서 열렸던 라흐마니노프 페스티벌에서 저드와 함께 협연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4번>이다. 아직도 많은 이들이 애정을 가지고 기억해 주고 있다.”

그는 “나 자신이 종종 지휘자들의 자만심 때문에 지칠 때가 있다”라며 “지휘자들에게는 오케스트라의 최고 권위가 필요하지만 간혹 자신들이 주역이 되어 군림하려고 하다가 또 즉흥적이 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나는 연주가 함께하는 ‘협력’이 아닌 ‘타협’은 싫다. 그럴 때면 차라리 혼자 연주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라면서 “그렇지만 마에스트로 제임스 저드와는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귀띔했다.

“그는 함께 일하기 너무 즐거운 사람이어서 그와는 항상 행복하게 연주하게 된다. 항상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일 줄 알고, 연주자를 존중해 준다. 특별히 무언가를 토론할 필요 없이 그냥 연주가 흘러가는 느낌이다. 모처럼 그와의 협연이 기대된다.”

금발에 매혹적인 외모를 자랑하는 리시차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태어나 4살에 독주회를 했고, 7살에 키예프음악원에서 수학할 정도로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그는 리센코 콩쿠르, 파리 실내악 콩쿠르, 우크라이나 실내악 콩쿠르 등에서 입상했다. 91년 키예프음악원 시절 만난 남편 알렉세이 쿠즈네초프와 함께 듀오 피아노 콩쿠르인 머레이 드라노프 투 피아노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뒤 이듬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는 1995년 링컨센터의 모스틀리 모차르트 페스티벌에서 뉴욕 데뷔 무대를 가진 뒤 샤를르 뒤투아가 지휘하는 프랑스 국립 교향악단과 미국 순회 연주회를 가졌다. 그는 미국과 유럽의 유명한 오케스트라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전곡을 연주했으며, 남편 알렉세이 쿠즈네초프와의 듀오 콘서트를 포함해 미국 29개 도시에서 리사이틀을 열었다. 2006~2007 시즌에는 전미 순회 리사이틀을 벌였으며, 2007~2008 시즌부터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과 미국과 유럽 투어를 벌이고 있다.

그는 남편과의 듀오 콘서트에 대해 “서로 아주 다른 아티스트가 그들의 개성을 최대한 조화롭게 만드는 작업은 마치 마법과도 같다”라며 “알렉세이와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새로운 작품에 대해 공동의 목표를 두고 접근한다”고 말했다.

“가끔 우리의 관점이 어떤 작품에 대해 전체 또는 한 프레이즈 안에서도 매우 다를 수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이 결정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다. 종종 해석은 시간이 흐르면서 극적으로 변한다. 그러면 된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그에게 특별히 좋아하는 작곡가와 작품을 물었다. 그러자 베토벤과 브람스, 그리고 라흐마니노프를 꼽았다. 어렸을 때는 상당기간 리스트나 쇼팽과 함께 했으니 그동안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고 말했다.

“어렸을 때 한동안 리스트에 반해서 2011년 그의 탄생 160주년을 맞아 그의 모든 작품을 연주하겠다 마음먹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건 꽤 오래전 이야기다. 젊은이들이 한 때 액션이나 공상과학영화에 심취하는 것처럼 나도 리스트에 대해 그랬다. 그의 많은 작품을 좋아하지만, 그의 음악은 내 레퍼토리의 근간이 되지는 않는다.”

그는 오히려 라흐마니노프는 리스트와는 정반대였다고 털어놓았다. 너무 과잉감성에 말랑거리고 대중에 영합한다고 생각해서 그의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에서 열린 제1회 라흐마니노프 국제 콩쿠르 출전도 거부했다고 한다.

그는 “아마 너무 많이 연주되는 곡에 대한 거부감이었던 것도 같다”라면서 “그런데 어느 날 라흐마니노프가 직접 연주하는 음반을 듣고 그가 작품을 통해 진정 표현하고자 하는 것이 무언지를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에게 전문 연주자를 꿈꾸는 피아노 전공자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의미심장한 대답이 돌아왔다.

“인생을 걸고 전문 피아노 연주자로서 살겠다고 결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음악은 매력적이기만 한 직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대 위에서의 화려함과 갈채는 매일 매일의 힘든 노력의 대가이다. 연습과 끝없는 투어 연주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이것들은 상대적으로 즐거운 것일 수 있다. 무지한 에이전트나 무관심한 주최 측, 질투심에 불타는 동료들, 부당한 리뷰 등의 문제를 처리하는 부분도 포함된다는 말이다.”

그는 “음악은 정확한 과학이나 스포츠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음악에는 단 하나의 진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나의 진실이 무자비하게 공격당할 수도 있다”면서 “내 음악적인 견해를 지키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 피아니스트들은 다른 음악가들처럼 오케스트라에 들어갈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홀로 외롭게 싸워야 하는 외로운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무대에서의 소중한 순간이 보상이다. 숨도 멎은 듯한 청중들이 나만을 바라보며 집중하는 이 순간을 위해 사는 것이다.”

현란한 속주와 강한 타건을 바탕으로 몰아치는 리시차는 음반을 녹음할 때도 실황공연처럼 전혀 편집을 하지 않고 한 번의 연주를 그대로 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만큼 자신의 연주실력을 믿는다는 이야기다. 그의 시디 음반 8장이 오디오폰 레이블로 발매되고 있고, 그의 연주 모습을 담은 3장의 디비디가 나와있다. 국내에서는 씨앤엘뮤직이 데뷔 음반 <비르투오사 발렌티나>와 쇼팽의 <에튀드 24개> 전곡 연주 디비디(피시엠 스터레오)를 수입·판매하고 있다.

그는 “내년 봄부터 시작해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개> 전곡을 녹음하고 싶다”면서 “에베레스트를 등반하거나 우주로 날아간 사람보다 이 프로젝트를 마친 피아니스트가 훨씬 적을 것이다. 그 안에 속하고 싶다“고 밝혔다.

리시차는 내년에도 힐러리 한과 듀오로 일본과 유럽, 북남미를 돌며 40회 이상의 연주를 소화해야 하고, 남편과의 듀오 콘서트와 개인 리사이틀, 음반 녹음 작업 등으로 빡빡한 일정이 잡혀 있다. 그렇지만 그는 “서울 연주를 성공적으로 마쳐서 다시 초청받고 싶다. 개인 독주회도 갖고 싶다.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도 연주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2월4일 연주회에는 졸탄 코다이의 <갈란타 춤곡>과 라흐마니노프의 <교향적 춤곡>도 연주된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발렌티나 리시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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