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2.17 18:43
수정 : 2009.02.18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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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년 동안 화강석을 파내 흉물이 된 폐채석장에 치유의 손길이 닿으면서 인공절벽과 호수가 어우러진 문화예술공원인 아트밸리로 거듭났다. ‘포천캐년’으로 불리는 주 채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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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포천 아트밸리
흉물스런 폐석산 돌 파낸 구덩이
엉터리 복구 대신 예술공간으로
국제작가 초청 화강암 조각 계획
서울지하철, 인천공항, 청와대, 국회의사당 …. 수도권 기간시설의 건축재로 쓰인 화강암은 어디서 왔을까. 도로포장용 아스팔트에 쓰이는 깬돌과 아파트공사장 레미콘용 깬모래는 또 어디서 올까. 화강암 천지인 북한산, 불암산, 수락산, 남산 중 어느 한 곳일까? 아니다. 다름아닌 경기도 포천이다. 1960년대부터 50년 가까이 ‘질 좋은 포천석’이 43번 국도를 통해 서울로 서울로 실려가면서 국도변 2~3㎞ 이내의 푸른 산들은 흉물스럽게 벗겨지고 파헤쳐졌다. 현재 속엣것을 다 내주고 뻥 뚫린 데가 확인된 곳만 11군데 53만4천여㎡이다.
포천시청에서 남동쪽 5㎞ 떨어진 신북면 기지리 산중턱 14만2천㎡ 일대. 혜성·동인 등 석재업체가 반세기 동안 수백억원어치의 돌을 파내고 복구 예치금으로 고작 1억5천만원을 내어 어린 나무들을 꽂아 두었던 산사태 위험지역. 흉물 폐채석장이 아름다운 문화예술공간인 ‘아트밸리’로 탈바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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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절벽을 배경으로 한 수변 공연장, 작가입주 및 작품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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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입 홍보전시장을 지나면 20도 화강암 포장도로. 경사로를 오르면 조각공원으로 조성된 잔디밭이 나오고 길 옆 수직으로 깎아낸 바위에 검은 줄무늬와 페인트 흔적이 보인다. 철분이 녹아내린 흔적, 채석허가 범위를 표시한 것이다. 조금 더 올라 화강암 관문을 지나면 ‘포천캐년’이 나온다. 90도 깎아지른 60여미터 절벽이 좌우로 옹립하고 그 사이 청옥처럼 푸른 물이 절벽 그림자를 안고 고인 것이 아름다운 이국에 든 느낌이다. 하지만 바위를 찬찬히 뜯어보면 사각형 무늬가 차곡차곡 쌓인 것이 바윗덩이를 떼어낸 흔적이 고스란하다. 호수 역시 최고 수심 20미터. 엄청나게 메운 게 그정도다. 호수 저쪽 또다른 통로를 통하면 절벽 아래 ‘수변 공연장’에 이른다. 여름밤 색다른 공연을 펼칠 수 있다. 90도를 틀어 또다른 절벽은 말끔한 것이 영화스크린으로 안성맞춤이다. 왼쪽으로 난 길을 다시 오르면 단체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는 야외공연장이 있고 미술품 전시장으로 쓸 수 있는 건물이 세워졌다.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155억원을 들인 결과다. 아직 공식 개장을 하지 않았지만 아름답다는 입소문이 나 주말이면 100여명이 찾아온다.
포천시에서 어떻게 이런 창조적인 발상이 나왔을까.
“당장 돈 안 되는 일을 민간에서 할 까닭이 없죠. 애초 아이디어는 녹지과에서 나왔어요. 복구 흉내만 내고 방치하느니 절벽에다 큰바위 얼굴을 조각하자고 했어요. ‘무모하다, 또다른 파괴다’라는 의견이 나왔고 그에 따라 문화예술공원으로 수정·확대됐어요.” 포천시청 아트밸리팀 권혁관 팀장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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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밸리 개발 전(왼쪽)과 후. 포천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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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자립도 30% 미만인 포천시에 포천석은 효자산업. 그동안 시를 먹여살린 것은 분명하지만 먼지·소음·식수오염 등 각종 민원이 끊이지 않은 것도 사실. 채석 인허가, 채취범위 준수, 복구 등 이권과 직접 관련된 탓에 뒷소문이 돌고 수시로 감사가 이뤄지는 등 공무원들 사이에 기피업무에 속했다. 50년간 포천의 대표산업이었는데도, 시내 어디에도 화강암으로 된 기념조형물 하나 없다. 권 팀장은 워낙 골치 아픈 일이라 그런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아트밸리는 앞으로 3년 동안 53억원을 더 들여 지하 1층, 지상 3층의 창작스튜디오, 암벽등반 시설, 폭포 등을 설치하게 된다. 또 민간자금을 끌어 460미터 모노레일과 게스트하우스 등을 지을 예정이다.
이르면 2011년부터 화강암 조각을 중심으로 한 국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그 결과물은 화강암 조각공원에 공개 전시된다. 이와 함께 각종 전시회, 음악공연, 축제 등이 철따라 열리게 된다.
포천시에서는 기지리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시내의 다른 폐채석장도 재활용할 계획이다. 가장 규모가 큰 동교동 폐채석장은 대규모 공연장으로, 두번째로 큰 내촌면 소학리 폐채석장은 골프·스키 등 스포츠레저 시설로 개발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문화관광체육부에서는 지역 근대문화유산 재활용 지원 프로그램에 따라 국비를 지원해 줄 계획이다. 디자인공간문화과 한민호 과장은 “2014년 서울~포천 민자고속도로가 완공되면 서울에서 30분이면 도착하게 된다. 프로그램만 잘 운용하면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글·사진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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