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
|
피케이엠 트리니티 갤러리에서 여는 개인전을 위해 방한한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을 25일 갤러리에서 만났다. 짧게 깎은 은발의 그는 퇴역 상사 같은 분위기였다. 치열한 전쟁터에 내보낼 신병을 조련하는 냉혹한 교관이었던 흔적이 말투에 그대로 배어 나왔다. 기자들의 물음 자체도 원론적이기는 했지만 말투 자체가 차분하고 논리적인 설명조였다. 쉬운 단문으로 구성된 그의 말은 이해가 무척 쉬웠다. 그는 골드스미스대학 교수로 데미안 허스트 등 ‘젊은영국인아티스트(yBA)’를 배출해낸 명조련사. 자신의 제자 특히 데미안 허스트가 ‘또라이짓’을 하면서 뉴스를 만들어가는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나는 그의 대변인이 아니다. 그를 옹호하는 말은 나보다 그 자신이 더 잘한다. 데미안은 특이하고 힘이 넘치는 인물이다. 영리하고 야심적이고 사려깊고 용감하다. 88년도 프리즈전시회부터 최근의 옥션쇼까지를 한 시기로 본다. 한 작가를 정확하게 시기화할 수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다음은 새로운 시대가 될 것이다.” 그는 청출어람 제자에 대해 해가 될만한 말을 하지 않았고 또한 말을 무척 아꼈다. 다만 그의 교육철학을 자세히 설명했다. ”예술을 가르치기는 흥미롭지만 어렵다. 제자들이 졸업 뒤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를 이해해야 좋은 선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제자들이 나를 닮기를 원하지 않았다. 다만 예술이란 무엇일까라는 그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고 싶었다. 그 다음은 나름의 성격, 성향에 따라 학생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학생들은 자주 자기의 관심사에 자신감 없어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자신의 관심분야를 스스로 잘 알기 때문에 쉬운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에 자신감을 불어 넣으려 노력했다. 내가 제자들을 살표보니, 재능있는 학생은 그것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다. 정작 미술판에서 뛰어난 학생은 재능은 떨어져도 의지가 충만한 사람들이다. 재능이 떨어지니 불가피하게 창조적이 될 수밖에 없다. 남들은 yBA가 스타일리시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데미안 허스트, 루커스 등 모두 작품이 서로 무척 다르고 아주 개성적이다. 그들은 개인의 강력한 의지에 바탕해 독창적인 작업을 하고 있다. 좋은 작가는 자신의 관심과 작업을 극단으로 몰고 갈 수 있어야 한다. 조심스러움은 전혀 도움이 안 된다.” 그는 자신이 개념적인 미술을 하다가 팝 아티스트로 불리게 된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팝아티스트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나는 오랫동안 비슷한 이미지로써 흑백 벽화작업을 해왔다. 사람들은 그때까지 나를 팝아티스트라고 부르지 않았는데, 내가 색을 사용하면서 그런 말을 듣게 됐다. 팝 아트란 광고, 만화, 영화 등 기존의 이미지로써 이미지화하는 것을 말한다. 나의 관심은 이미지가 아니라 오브제다. 이미지를 사용하기보다 오브제를 찾는데 관심이 있다. 1960년대 학생때 팝 아트에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예술이 전문지식인뿐 아니라 평범한 이들을 포함하는 광범한 관객을 수용할 수 있게 하자는 운동이 팝 아트인데, 나는 대중들의 예술 참여를 가능하게 하는 취지를 좋게 생각한다. 앤디 워홀은 마릴린 몬로, 코카콜라 등 알려진 유명한 이미지를 썼다. 나는 그가 사용한 마릴린 몬로보다 유명한 것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의자, 신발, 테이블이 그렇다고 생각했다. 단순한데다 널리 쓰이는 물건으로, 일종의 국제언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오브제의 소비성, 키치성에 관심이 없다. 나는 평범한 물건을 단순하고 비개성적인 선으로 표현한다. 드로잉은 똑같은 물건을 표현하는 유용한 도구다. 내가 대상으로 삼은 공산품의 대량 생산성과 도구로 선택한 드로잉의 라인이 어떤 점에서는 완벽하게 조응한다. 오브제를 그리는 선은 건축에서의 선처럼 우아하고 시적이며 때로는 복잡하다. 나는 물건의 물성에 관심이 있다. 회화는 의자의 이미지를 그리는 것으로 그림은 의자 자체가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의자처럼 보이게 그린다. 나는 색깔로써 대상을 가장 유니크하게 만든다.”
그의 작품은 18년 전까지만 해도 무채색 드로잉이었다. 지금처럼 색을 쓰게 된 까닭은 무엇일까. “드로잉이나 회화에서 색깔은 선처럼 일종의 도구다. 있는 도구를 안 쓰는 것이 더 힘들다. 나는 오랫동안 색을 사용하려 했지만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 때로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18년 전 로마의 오랜 빌딩의 방을 보고 방을 위한 벽화작업을 했다. 벽을 무난한 세 가지 색으로 칠하고 그 위에 테이프 드로잉을 했다. 한번 색을 써 본뒤로 내 작업은 환상적으로 변했다. 나의 작업은 그 뒤로 색깔이 없는 것은 없었다. 두번째 전기는 파리에서였다. 일곱 개의 방을 노랑, 파랑, 빨강 등 강렬한 색깔로 칠하고 그 위에 자연스런 색으로 오브제를 그렸다. 그리고 어느 때부턴가 벽에다 칠했던 강렬한 색이 오브제를 위한 색이 되었다. 색깔이 강렬한 것은 아무래도 설치에서 회화로 옮겨왔기 때문인 것 같다.” 그의 작품의 특징은 공산품, 예컨대 의자, 테이블, 커피포트, 전구, 플라스틱 의자 등을 선으로 분해해 색깔을 입힘으로써, 유일한 어떤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일상에서 수없이 만나는 평범한 것이고 일견 똑같아 보이는 것들이지만 예그가 예술가의 눈으로 분해하여 새로운 색을 부여함으로써 작품이 되는 것이다. 1973년 그가 개념적으로 보여준 <참나무 OAK TREE>가 그의 예술철학을 대변한다. 딸랑 물이 담긴 물컵 하나를 선반에 올려놓고 참나무라고 이름붙인 것. 물과 참나무를 이어놓은 어처구니 없는 작품을 두고 질문이 쏟아진 것은 당연하다. 그는 화가들이 자전거를 그려놓고 자전거라고 이름 붙이지만 그것은 자전거가 아니라는 것이다. 자전거의 물성 즉 색깔, 사이즈, 느낌 등으로써 그것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는 것이다. 물이 담긴 컵과 선반은 참나무와 공통되는 물성이 없지 않으니 그렇게 이름지어도 안될 게 무어냐는 의미로 읽힌다. 그가 화폭에 그러낸 오브제의 색깔은 오브제가 가진 것인가, 그가 투사한 것인가. 그는 색깔을 부여함으로써 대상을 유니크한 존재로 만든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어디 오브제가 강렬할 색으로 돼 있겠는가. 그가 색깔을 부여한 것이고 그가 부여한 색은 그의 심상에 각각의 오브제가 바로 그런 색이어야 한다는 것은 투사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는 자신의 작품이 공장에서 그려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노동과 정성이 드는, 단 하나의 작품이라고 말했다. 즉 색깔별로 에디션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또 색깔 외에 컴퓨터를 사용하면서 작품이 폭발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그 전의 작업은 준비단계라고 말했다. “15년 전부터 컴퓨터를 사용했다. 컴퓨터는 나를 위한 완벽한 발명품이다. 주로 쓴 것이 워드의 페이스트 기능이다. 컴퓨터를 쓰다보니 워드로 작업하는 방식과 나의 이미지 작업과 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컴퓨터를 사용해 시트의 이미지를 스캔, 저장하여 일종의 언어사전을 만들었다. 컴퓨터 자체는 창조를 하지 못하지만 완벽한 도구다. 컴퓨터를 사용한 이후 스케치도 컴퓨터로 하는데, 하나로써 두세개 밖에 못하던 것이 이제는 백여개까지 가능하게 됐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업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컴퓨터로 드로잉하여 이미지 작업을 한 뒤 알루미늄판에 비디오 프로젝션을 쏘아 테이프로 전사한다. (예전에는 슬라이드를 썼다.) 물론 원하는 바탕색을 미리 칠해 둔다. 그 다음에 기성물감을 그대로 써서 소형 롤러로 칠한다. 원색을 쓰는 것은 강렬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색을 섞으면 강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힘들지만 즐거운 것은 아무리 이미지가 복잡해도 테이프 떼기 10분 전까지는 어떻게 구현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작업은 항상 의외의 놀라움과 기쁨을 준다.” 이번 피케이엠 트리니티 갤러리에서는 버킷, 전구, 지구본, 메트로놈, 구두, 의자, 샌달, 커피포트를 소재로 한 회화작품과 벽화 세트가 전시된다.
![]() |
![]() |
![]() |
(*이 기사는 네티즌, 전문가, 기자가 참여한 <블로그> 기사로 한겨레의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겨레 블로그 내가 만드는 미디어 세상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