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02 12:00
수정 : 2009.03.0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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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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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회 ‘스페이스 공감’ 살아있는 소극장 공연
인디밴드, 음반 들고 찾아와 “출연하고 싶다”
‘그곳에 가면 진짜 음악이 있다!’
2004년 4월 도발적인 구호를 내걸고 닻을 올린 교육방송 음악 프로그램 <이비에스 스페이스 공감>(월~화 밤 12시5분)이 2일로 방송 500회를 맞는다. 1년 내내 주 5회 공연을 펼치고, 이를 녹화해 방송하는 형식은 상상할 수 없는 파격이었다. 출연진 또한 아이돌 가수 일색인 기존 음악 프로그램의 관성에서 벗어나 유명세는 덜해도 공연을 제대로 하는 음악인들로 채웠다. 살아 있는 음악에 목말라하던 시청자들은 곧 골수 팬이 됐다. 지난해 말 시작한 문화방송 <음악여행 라라라>(수 밤 12시35분)도 비주얼 대신 음악을 중심에 내세우는 흐름을 이어받았다. 음악 프로그램이 판에 박힌 틀을 깨고 한 단계 진화한 것이다.
■ 소극장 공연의 숨소리까지 안방으로 지난달 24일 저녁, 서울 도곡동 교육방송 사옥 1층 로비 한구석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공감> 공연장에 들어가기 위해서다. 여느 공연처럼 입장권을 내고 들어가니 151석 규모의 아담한 소극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공연장을 양 옆으로 길게 만든 탓에 맨 뒷자리에 앉아도 무대까지 거리가 5m 안팎에 불과하다. 이날 공연의 주인공은 래퍼 피타입. 밴드의 라이브 연주 위로 물 흐르듯 내뱉는 랩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을 파고든다. 랩 도중 숨 쉬는 소리까지 들려온다. 앙코르까지 1시간30분의 공연이 끝난 뒤 자리에서 일어나는 관객들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 피타입 공연은 50분 분량으로 편집돼 4월 방송된다.
<…공감>은 기획 단계부터 방송보다 공연을 중심에 뒀다. 당시 경영진이 “고급 문화 콘텐츠를 시청자에게 직접 서비스하자”며 태스크포스를 꾸렸고, 그래서 나온 게 매일 공연하는 방식이었다. 사옥 강당을 공연장으로 개조했다. 관객은 누리집에서 신청을 받아 추첨으로 결정한다. 물론 공짜다. 요즘 평균 경쟁률은 10 대 1을 가뿐히 넘는다.
초기에는 재즈나 퓨전국악 팀을 주로 초대했다. 그러다 록, 포크, 일렉트로니카 등 다른 갈래로 넓혀 나갔다. 연주까지 라이브가 원칙이다 보니 아무래도 댄스 음악은 배제된다. 처음에는 인디 밴드에 출연을 요청하면 “우리가 왜 교육방송에 나가죠?”라는 물음이 되돌아왔단다. 하지만 이제는 인디 밴드들이 먼저 음반을 들고 와서 “출연하고 싶다”고 할 정도다. 그동안 출연한 음악인들이 무려 450개팀가량. 제이슨 므라즈 등 내한공연을 하러 왔다가 출연한 외국 음악인들도 60~70팀이나 된다. 출연진들은 모두 1200차례 이상 공연을 펼쳤다. 500회 방송에선 주요 공연들을 몇 가지 주제로 나눠 돌아본다.
■ 녹음실의 농밀한 사운드를 안방으로 지난달 11일 오후 경기 고양시 일산 문화방송 드림센터 녹음실. 평소 조용하던 이곳이 사람들로 북적인다. <…라라라>를 녹화하는 날이다.
녹음실 한가운데 기타를 둘러메고 앉은 이장혁이 노래를 시작하자 다들 숨을 죽인다. 스테디캠을 몸에 부착한 촬영기사가 이장혁에게 다가가 구석구석 렌즈로 훑는다. 노래를 마친 이장혁이 성에 안 찼는지 “한 번만 다시 갈게요”라고 요청한다. 관객이 없기에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가 없다. 최고의 결과물을 위해 그렇게 몇 번이고 재녹음·재촬영이 이어진다. 이날 녹화분은 2주 뒤인 25일 전파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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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여행 라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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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첫 방송을 한 <…라라라>의 기획 의도는 단순했다. 적은 비용으로 양질의 음악 콘텐츠를 전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별도의 세트를 제작하는 대신 택한 곳이 녹음실이었다. 비좁은 느낌이 있지만, 소리를 제대로 들려주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그 결과 <…라라라>의 사운드는 음악 프로그램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장혁과 함께 녹화를 한 밴드 검정치마의 조휴일은 “마치 음반을 녹음할 때처럼 미세한 소리까지 다 잡혀 더 긴장됐다”고 말했다.
출연진을 섭외할 때도 음악 자체가 최우선의 기준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음악성은 뛰어나지만 사람들에게 덜 알려진 음악인들이 출연하는 경우가 잦다.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이승열이 첫 출연자였다는 점부터 상징적이다. 인디계의 떠오르는 스타 장기하와 얼굴들, 포크 가수 손지연 등도 출연했다. 1999년에 데뷔한 이장혁이 난생처음 방송에 출연한 것도 <…라라라>이기에 가능했다. 제작진은 “우리가 좋은 음악인을 찾아내 알린다고 생각하니 책임감이 더 생긴다”며 “주류·비주류를 가리지 않고 더 많은 음악을 열심히 찾아 듣는다”고 말했다.
보는 방송에서 듣는 방송으로, 즐기는 방송에서 느끼는 방송으로. 비주얼과 엔터테인먼트의 극한으로 치닫던 음악 프로그램들이 하나둘씩 음악의 근원적인 속성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역류가 곧 진화인 셈이다.
글·사진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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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석 ‘스페이스 공감’ 피디“비주류만 선호? 아니다 음악성 갖춘 스타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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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석 ‘스페이스 공감’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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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경석 교육방송 피디는 <이비에스 스페이스 공감>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다. 다른 공동 연출자는 몇 차례씩 바뀌었어도 그는 늘 <…공감>을 지켜 왔다. 당연히 애정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공학을 전공하던 대학 시절, 연극반 활동에 빠져들었어요. 그러다 방송 일을 하고 싶어졌고요. 피디가 된 뒤 드라마 제작만 4년 이상 했죠.”
드라마 제작에 한창 바쁠 즈음, 사내에서 음악 프로그램을 준비한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던 백 피디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손을 번쩍 들어 자원했다.
“처음엔 매일 하는 공연의 질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어요. 공연에 강한 재즈, 크로스오버, 퓨전국악 쪽 음악인들은 수가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다른 장르로 범위를 넓혀 들여다보니, 특히 인디 쪽에 좋은 음악인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이제 출연진 걱정은 전혀 안해요.”
<…공감>에선 철저하게 음악인이 주인공이다. 공연에서 부를 노래를 출연자 스스로 고른다. 진행자도 따로 없다. 연출자는 최대한 개입을 자제한다. 대신 연출자는 테마가 있는 기획 공연을 준비하거나 무대에 오를 음악인을 발굴하는 데 집중한다. 백 피디는 틈나는 대로 홍대 앞 라이브 클럽으로 달려가고, 일주일에 적어도 15팀 이상의 음악을 챙겨 듣는다.
가능성 있는 신인을 발굴하기도 한다. <…공감>과 문화콘텐츠진흥원이 지난해부터 함께 진행하는 ‘헬로 루키’ 행사가 그것이다. 라이브 경연대회를 열고 매달 세 팀씩 골라 방송에 출연시킨다. 연말 결산대회도 열었는데, 국카스텐(대상), 한음파(특별상), 장기하와 얼굴들(인기상) 등이 수상했다.
<…공감>은 오는 4월 다섯 돌을 맞는다. 백 피디는 한 달 내내 축하 공연을 벌일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가 비주류만 선호하는 건 절대 아니에요. 대중성과 음악성을 겸비한 스타 음악인도 얼마든지 환영합니다. 서태지가 우리 무대에서 어쿠스틱 반주에 맞춰 노래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즐겁지 않나요? 문화적 다양성을 뒷받침하는 <…공감>이 최소 20년은 갔으면 좋겠어요.” 글·사진 서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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