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3.31 20:42
수정 : 2009.03.31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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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호 <300개의 조용한 꽃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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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립미술관 ‘신오감도’
서울시립미술관 기획전 ‘신오감도’(新五感圖)는 회화를 새롭게 이해하게 한다. 오감도란 시각·청각·후각·촉각·미각의 ‘오감’을 상징하는 물건을 함께 그린 정물화로, 16세기 말부터 17세기 초까지 유럽에서 유행했던 일종의 ‘이발소 그림’. 감각의 찰나성과 허무함을 교훈적으로 제시한다. 오감도에서 이름을 빌려온 신오감도는 오늘날 미술 작품에서 신체의 감각이 어떻게 작품의 영감과 상상력의 도구로 활용되는지를 알아본다. 재미있는 것은 여러 감각을 한꺼번에 만족시킬수록 오감도처럼 예스러워진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감각 가운데 시각 다음으로 예민한 감각은 청각. 시각의 청각 전환은 형태와 색의 반복과 변주를 통해 이뤄진다. 규칙적이면 리듬, 불규칙하면 소리가 된다. 출품 작가 중 김환기, 한묵, 신영상씨의 작품은 리듬으로, 이준, 홍종명, 우제길씨의 작품은 소리로 들린다. 청각과 촉각을 함께 만족시키는 바람 이미지도 상당수. 이우환, 김호득씨가 감각에 투영된 바람을 형상으로 잡아낸 반면, 차명희(풀잎), 문봉선(버드나무), 안병석(보리)씨는 자연에 판박이된 바람을 여실하게 잡아냈다. 촉각 즈음에서 회화는 구체성을 띠기 시작하는데, 촉각의 원시성 또는 불가해성과 일치한다. 후각과 미각에 이르면 이를 형상화한 회화는 완전한 구상이 되고 급기야는 조각으로 장르를 바꾼다. 촉각보다 더 원시적인 후각과 미각은 강렬한 냄새와 맛을 내는 대상을 직접 그림으로써 표현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윤병락(사과), 황순일(썩은 게), 이용학(청포도), 안성하(사탕)씨 등의 작품이 극사실화에 속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신미경, 안성희, 박재웅씨의 작품은 조각·설치작품들이다. 이들 극사실화(또는 조각설치)는 후각·미각·촉각을 한꺼번에 만족시킨다. 황순일씨의 작품은 옛 오감도 가운데 삶의 허무함까지 전하는 ‘바니타스’ 정물화를 방불케 한다.
하지만 또다른 방식으로 오감을 만족시킬 때 현대와 통하는 것은 아이러니다. 손원영, 김병호, 최승준, 양민하, 전가영씨 등은 신기술을 접목해 시각과 청각을 아우른 인터랙티브 작품들을 내놓았다. 놀이와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면서 예술의 본질을 건드린다. 6월7일까지. (02)2124-8800.
임종업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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