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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수 <형상,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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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 박물관·서울대 미술관 기획전
쇠는 지배층의 몫이다. 석기시대 말, 청동은 뾰족함과 번쩍거림과 울림을 가진 신물질이었다. 뾰족함은 무력이었고 번쩍거림과 울림은 종교였다. 그때는 뾰족함과 번쩍거림이 등가였다. 이어 등장한 철이 세상을 평정했고, 청동은 종교와 의례의 세계로 침잠했다. 철은 짧은 태평성대에 잠시 괭이와 보습으로 모양을 바꾸었을 뿐 오로지 창과 칼이었다. 반면 청동은 단골한테 거울과 방울과 쇠북이었고, 불단에 불상과 동종과 정병으로 오르고, 제례상의 합, 항, 발이 되었다. 종내는 안방 노리개 또는 저자의 노리개인 동전이 되었다. 이화여대 박물관에서 열리는 기획전 ‘한국의 금속미술- 두드리고 다듬다’에서는 이러한 누천년 금속사를 읽을 수 있다. 유물이 썩 많지 않은 게 오히려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한다. 머리에 오는 것은 5~6세기 ‘금동용형 장신구’(14.6㎝). 앞뒤 같은 모양의 납작 용인데, 비늘과 갈기를 음각해 나무자루 끝에 고정시킬 수 있도록 촉을 달았다. 깃대 끝에 꽂았을 것으로 추정한다. 11~14세기 고려 때의 ‘금동 장신구’(1.5~3.4㎝)에는 용뿐 아니라 벌, 거북, 학, 원앙, 봉황, 물고기, 꽃 등이 투각돼 있다. 성장한 남녀의 옷깃을 장식하지 않았을까. 19세기 ‘철제 은입사 십장생문 담배함’(높이 8.2㎝)은 담배가 일상화한 조선후기의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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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제 ‘황비창천’ 명 신주문 8릉형 거울(고려 10~14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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