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2.10 19:11
수정 : 2009.12.10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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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현실일 뿐>(135X180cm,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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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노그래퍼’ 지호준 첫 개인전
‘나노그래피’는 새말이다. 10억분의 1m를 뜻하는 ‘나노’와 ‘포토그래피’를 합쳤다. 전자현미경으로 본 극미의 세계를 가시적인 사진 작품으로 구현한 것을 말한다. 이 말을 만들어 쓴 지호준씨도 첫 개인전을 여는 새내기 사진작가다.
지씨의 사진은 그가 카이스트 문화기술 대학원에 재학중인 학생임을 증언한다. 그곳 전자현미경실에 있는 최고 80만배율 장비를 이용해 이미지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탄소-산소-수소-규소 화합물인 폴리디메틸실록산. 건축물 방수에 쓰이는 ‘실리콘’과 비슷하다. 여기에 전자빔을 쐬면 표면적이 늘어나는 식으로 구조 변화가 일어난다. 본디 태양열 전지에 응용하기 위한 실험실 작업이었는데, 눈빛이 초롱초롱한 지씨는 입자들이 활엽수 가지나 이끼·양치류 또는 해저의 산호나 우뭇가사리처럼 성장하는 것에 주목했다. 거기에서 그는 나무를 보고 숲을 보았다. 그리고 눈을 돌려 지상의 나무와 숲을 보았다. 내가 방금 본 것은 뭐지? 본다는 게 도대체 뭐지? 이번 개인전은 그러한 원초적인 질문을 풀어낸 결과물이다.
한장의 사진. 창을 경계로 안쪽에는 현미경에서 나온 나무들이 고요하고 바깥에는 실제 나무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그리고 아래쪽에는 물에 비친 허상이 물기운을 얻어 푸르딩딩한 것이 거꾸로다.
지씨가 한 일은 크게 두 가지. 현미경에서 얻은 무채색 이미지에 색깔을 부여하기. 녹색을 주면 지상의 이끼나 숲, 갈색이나 붉은색을 주면 해저 숲이다. 다음으로 넓디넓은 창이 달린 실내 수영장을 찾아내어 그 건물이 해를 등질 무렵 벽, 천장, 기둥 등에 이미지를 투사한 뒤 촬영하기. 그렇게 해서 1000만분의 1과 1 또는 실상과 허상의 대비가 이뤄진다. 새내기 작품치고는 구조가 단단하다.
작품 앞에 서면 관객은 파인더 앞의 작가가 된다. 질문은 꼬리를 물어 확대된다. 인간은 무엇인가? 우주와 현미경 세상의 중간자? 한 번뿐인 녹색 지구를 마구 헤집는 벌레? 어떻게 살아야 하지?
전시는 서울 청담동 박영덕화랑에서 19일까지 열린다. (02)544-8481~2.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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