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3.02 19:26
수정 : 2010.03.02 19:26
여성작가 둘의 전시회 눈길
한국 화가와 외국 화가, 30대 신진과 100살 거장. 전혀 다른 두 여성 작가의 그림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전시회가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다. 페미니즘 미술의 대명사이자 현존 최고의 여성 현대미술가로 꼽히는 루이스 부르주아의 신작, 다양한 이미지들을 조합하는 독특한 화풍으로 주목받는 박미나씨의 그림을 소개하는 전시회다. 부르주아전(02-733-8449)은 31일까지, 박미나전(02-735-8449)은 다음달 4일까지.
■ 부르주아, 꽃으로 생명의 신비를 그리다 화가들은 나이가 먹을수록 어린아이처럼 그린다고 했던가. 1911년생으로 우리 나이 꼭 100살이 된 부르주아는 더욱 대담하고 천진난만해졌다. 난봉꾼 아버지 때문에 늘 마음고생하면서 자란 부르주아는 자녀들을 키우는 데 평생을 바친 어머니를 보면서 여성성의 본질을 탐구해왔다. 짓궂을 정도로 남성들의 바람기와 성욕을 강하게 비판하는 작품을 선보여온 부르주아도 이제 많이 너그러워진 듯하다. 전시회 제목은 ‘꽃’. 그 자체로 식물의 성기이면서 씨앗을 잉태해 생명을 만들어내는 꽃은 회화에서 여성성을 상징하는 소재로 애용되어 왔다. 부르주아는 극도로 단순화한 꽃과 식물, 모자상 그림을 통해 수태의 의미, 출산의 신비로움 같은 생명 현상 그리고 그 결과 탄생하는 가족의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작가는 “아이를 낳아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그림을 안 봤으면 좋겠다”고 했다는데, 누가 보기에도 아름다운 생명력을 절로 느낄 수 있다.
■ 박미나, 기호와 이미지로 빚어낸 새로운 세상 박미나씨의 그림을 ‘독해’하는 데 필요한 열쇳말은 ‘딩뱃’이다. 딩뱃은 인쇄용으로 만든 이미지 자료를 말하는데, 컴퓨터에서는 딩뱃 번호를 눌러 이미지를 끌어온다. 작가는 디자이너들이 만든 이 기성 이미지를 주로 활용하면서 다양한 형상들을 한 화폭에 담아 존재하지 않는 새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얼핏 보면 불교의 만다라 같기도 하고 현대인의 삶을 담은 일러스트 같기도 하다. 영문 자판 상태에서 한글로 단어를 쳤을 때 각 자모에 해당되는 이미지들이 조합되는 우연, 그리고 기존 도상들이 갖고 있는 사회적 관념을 들여다보는 필연이 작품 안에 섞여 있다. 2층 전시장 벽 한면에 걸린 200여장의 어린이용 색칠공부 페이지들을 벽면 가득 모아 붙인 ‘색칠공부 드로잉’도 흥미롭다. 그림을 그리는 중간 중간 잠시 쉬면서 머리를 식힐 때, 또는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기 전 몸풀기용으로 재미삼아 하는 박씨의 취미 작업을 모았다. 색칠공부 특유의 ‘레디메이드’ 느낌에 작가가 자유롭게 더한 스티커 붙이기와 덧칠이 어우러져 개념적 회화로 재탄생했다.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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