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3.23 19:30
수정 : 2010.03.23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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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수 작가가 80년대 중반에 그린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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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 박노수 회고전 ‘봄을 기다리는 소년’
그림을 막 배우기 시작한 열여덟 소년 박노수는 스승 청전 이상범에게 대뜸 그림의 이치를 물었다. “그림은 여운이 있어야 하네.” 이미 화가로 일가를 이룬 스승의 대답을 초보 화가지망생이 이해하긴 어려웠다. 그저 열심히 그렸고, 어느새 박노수는 한국화 아카데미즘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그림이 무르익자 여운이 피어났다. 이전 화가들에게선 볼 수 없었던 선명한 빛들이 여운과 만나 조화를 부리며 박노수만의 그림을 만들었다. 그림 속에는 먼 곳을 바라보는, 또는 피리를 부는 소년이 있었다. 작가의 분신이자 때묻지 않은 이상적 존재를 나타내는 소년을 그는 평생 즐겨 그렸다.
한국화 1세대 대표작가
평생 화업 정리하는 전시
추상~구상 아우르는
새로운 미감 세계 펼쳐
다음달 18일까지 서울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남정 박노수(83) 화백의 회고전 부제는 그래서 ‘박노수, 봄을 기다리는 소년’이다. 반세기를 넘어선 그의 화업을 총정리하는 대형 전시회로, 모처럼 한국화 원로 스타작가를 다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작품들도 여럿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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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 박노수(83)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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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화백은 1950년대부터 일찌감치 주목받아 40여년 넘게 높은 인기를 누리며 한국화 1세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활동해왔다. 유명 화가의 제자로 들어가 도제식 교육을 받던 앞세대와 달리 남정은 현대식 대학 교육을 받은 첫 세대였다. 청주상업학교를 졸업한 뒤 당대 최고 화가로 꼽히던 청전 이상범 문하에서 그림을 공부하던 그는 1946년 서울대 미대에 진학해 한국화를 전공한다. 이후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에서 연이어 수상했고, 약관 스물아홉에 이화여대 교수가 된다. 1964년부터는 서울대 미대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현대 한국화단 최고의 엘리트 작가로 평생을 보냈다.
전통을 계승하면서 새 화풍을 완성한 청전의 제자답게 남정도 스승과 다른 독특한 자기 화풍을 일궜다. 남정은 전통적 소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새로운 미감으로 표현했다. 고전적인 여인 그림으로 출발해 말과 소년 그림으로 소재를 바꿔나갔고, 다시 산수와 인물이 조화를 이루는 특유의 그림으로 진화해갔다. 극도로 관념화한 시공간 속에서 대담한 색깔과 파격적인 구도가 어우러지면서 전통과 현대, 추상과 구상이 만나는 독특한 화풍이 완성됐다. 80년대 이후엔 눈이 부실 정도로 명도와 채도가 높아진 군청색을 즐겨 그렸다. 남정은 2003년 갑자기 찾아온 뇌질환으로 붓을 놓고 병상에 눕게 됐다. 지난 17일 개막식에 오랜만에 휠체어를 타고 참석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회고전을 돌아봤다.
이번 전시회에선 남정이 처음 그렸던 여성 인물화부터 후기 군청색 시기 작품들, 그리고 드로잉까지 작품 100여점과 70~80년대 그린 잡지 표지까지 함께 전시해 그의 작품 세계를 한눈에 돌아볼 수 있다. 입장료는 덕수궁 입장료 포함 어른 5000원, 청소년 2500원. (02)2188-6000.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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