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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창석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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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단 30돌 맞은 통영 극단 ‘벅수골’ 대표 장창석씨
‘한국의 나폴리’로 불리는 경남 통영시 중앙시장 안 지하공간에는 ‘벅수’들이 살고 있다. 1981년 고 장현을 대표로 단원 9명으로 태동해 척박한 지역 연극의 맥을 잇고 있는 통영 유일의 극단 ‘벅수골’이다. “지역에서 연극을 하는 작업은 너무 영리하면 결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바보 멍청이처럼 벅수라야 할 수 있죠. 또 장승을 가리키기도 하고, ‘벅수를 넘는다’의 재주꾼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81년 두 형과 극단을 창단하면서 묵묵하게 지역문화를 지키면서 문화예술의 재주를 넘어보자고 다짐했던 것이 어느덧 30년 세월이 되었네요.” 극단 벅수골 창단 30돌을 맞아 지난 17일부터 전시회를 열고 있는 장창석(57·사진·통영연극예술축제 집행위원장) 대표는 “지난 30년간 162회 공연에 쓰였던 옛 공연사진 100여점·포스터 150여점·팸플릿 100여점을 정리하면서 돌아가신 큰형님의 생각이 가장 많이 났다”고 지난날을 회상했다. 28살에 맏형인 고 장현과 둘째형 영석씨의 꼬임에 빠져 무대에 서다 노총각으로 늙어버렸다는 그는 “아직도 연극만큼 내 마음을 흔들 만한 배우자가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그는 81년 두 형의 권유로 극단 벅수골의 창단 단원으로 참여하면서 연극인의 길에 들어섰다. 처음에는 극단 무대장치를 맡으면서 어깨너머로 연극을 공부했다. 몇 차례 단역으로 출연하면서 연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대학로 극단을 전전하며 살기도 했다. 86년에는 시청 소유의 창고를 임대해 소극장 벅수골을 꾸몄다. 부족한 무대장치와 조명시설 등 부속장비 등은 건설현장에 일용직으로 뛰면서 충당했다. 그런데 그해 10월 큰형 장현이 과로로 쓰러져 43살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했다. “연극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형님을 죽게 했는지 궁금했습니다. 또 그동안 형님이 해놓은 것이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도망갈 궁리만 했는데 그때부터 한번 연극을 제대로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92년 영석씨의 뒤를 이어 극단 대표로 취임한 그는 “이제는 사회 이야기를 연극으로 보여주려고 했던 형님의 뜻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그래서 4년 전부터 ‘섬마을 순회공연’을 벌이고, 2008년부터는 통영연극예술축제를 마련해 시민들에게 다가가고 있다. “작곡가 윤이상과 소설가 박경리·김용익, 시인 김춘수·유치환, 시조시인 김상옥, 연극인 동랑 유치진, 화가 전혁림, 작곡가 정연주 등 걸출한 예술가를 배출한 예향 도시인 통영의 전통을 우리가 되살려야죠.”통영/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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