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07.29 22:40 수정 : 2010.08.02 08:47

민정기의 1980년 작. <세수>

‘현실과 발언’ 30주년 기념전

난해한 서구식 현대미술 벗어나
‘예술은 현실 반영’ 명제로 작업

오윤 유작전 등 ‘그때 그 그림’ 전시
창립전 좌절 ‘아르코’ 대관 또 불발

“우리는 처음 표현이 아닌 발언을 했다. 그게 역사적으로 중요한 거다.”

한국 문화예술위원장을 하다 현 정부에 의해 강제 해임된 작가 김정헌씨는 30년 전 자신이 참여해 만들었던 한 청년 미술인 모임의 의미를 이렇게 풀었다. 그 모임이 저 유명한 ‘현실과 발언’(약칭 현발)이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1980년 10월 첫 전시를 열며 등장한 ‘현발’ 동인 작가 10여명의 작품은 당시로선 불온하기 짝이 없었다. 흰색, 회색 단색 물감을 화면에 들이붓고 난해한 철학적 설명 붙이기를 현대미술의 정석으로 알던 당시 제도권 풍토에 현실을 정면으로 까발린 문제작들로 통렬한 일침을 놓았던 것이다.

그들은 마당에서 세숫대야를 경건하게 응시하며 세수하는 사람을 그렸다. 여성 속옷을 비롯한 온갖 야한 소비상품 광고를 짜깁기해 천민 소비사회를 조롱하는 콜라주를 만들었고, 코카콜라 판치는 세상을 전통 불화의 감로탱 그림으로 패러디했다. 몬드리안의 기하학적 색채그림을 호텔방의 지질한 풍경으로 바꾸었고, 모래밭에서 담배피우며 파리 잡는 ‘꼰대’를 아방가르드 화신으로 쓱싹거린 패러디 드로잉도 출몰했다.

기획 전시나 연구의 주제도 도시, 미국, 한국전쟁 등 그동안 미술계에서 생각도 하지 않았던 금기와 현실을 다루었다. 1980년 10월 서울 대학로 옛 미술회관(현 아르코 미술관)에서 시작한 현발 창립전이 미술관이 조명등을 꺼버리면서 단 하루 만에 끝나고, 결국 한달여 뒤 동산방 화랑에서 다시 창립전을 열어야 했던 곡절도 이런 배경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고충 덕택에 지금 한국의 젊은 작가들은 키치와 팝 등의 대중문화와 독한 풍자를 보편적인 작품 언어로 쓸 수 있게 됐다.


줄서기 포즈를 취한 초창기 ‘현발’ 회원들. 왼쪽부터 김정헌, 성완경, 노원희, 이태호, 김건희, 최민, 윤범모, 김용태, 임옥상, 강요배. 현실과 발언 30년 전시기획위원회 제공
‘예술의 현실의 반영’이라는 명제로 시작된 현실과 발언의 창립 30돌을 기리는 전시가 열린다. 29일부터 8월9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 전관에서 열리는 ‘<현실과 발언> 30년’전이다. 김종길 경기도 미술관 큐레이터와 독립기획자 이대범씨, 김준기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연구실장 등 젊은 기획자 5명이 짠 이 기획전은 80년 태동 뒤 90년 해체 선언을 거쳐 최근에 이르기까지 30년 현발 작가들의 다기한 변모를 보여준다.

핵심은 현발 회원작가들의 성향을 네개의 범주로 나눈 주제전이다. ‘사회적 현실과 미술적 현실’이라는 부제 아래 지하층과 1 ~3층에서 1개의 주제당 4~5명씩 1팀으로 묶어 전시하게 된다. 주재환, 임옥상, 이태호, 강요배, 노원희, 성완경, 안규철씨 등 현발의 주요 작가 20여명을 ‘새로운 매체의 실험과 확장’ ‘개념+예술+행동’ ‘비판적 현실과 신구상’ ‘삶의 풍경’ 같은 네 주제의 영역으로 각기 묶어 현발 시절과 그 이후의 작품을 소개하는 내용이다. 또 4층에서는 현발 동인 중 이미 고인이 된 백순환(1943~1998), 오윤(1946~1986)의 유작전, 5, 6층에서는 현발 창립전 출품작들의 원본, 복제본들을 재현하는 아카이브전이 마련된다.


지난해 5달여 비평 모임을 거쳐 준비된 ‘현발 30년전’은 자료 모음 측면에서 의미가 크지만 실망감도 적지 않다. 창립전이 열렸던 동산방과 아르코 미술관에서 다시 전시하기를 많은 미술인들이 원했지만, 결국 사전 협의 문제 등으로 무산됐다. 결국 불과 100여 m 거리인 동산방을 놔두고 상업화랑 공간에서 창립전을 재현하게 됐다. 창립전이 좌절됐던 아르코 미술관은 현재 정치적 상황에선 대관이 힘들 것이라는 예상 등으로 이번에는 아예 신청을 단념했다는 후문이다. 30년 주기로 되풀이된 기구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