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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1.09 20:09 수정 : 2010.11.09 20:09

‘브로콜리 너마저’

2집 낸 ‘브로콜리 너마저’

2005년 아마추어 습작 밴드처럼 시작한 ‘브로콜리 너마저’에게 눈길을 주는 이는 거의 없었다. 나름 갈고닦은 뒤 교내가요제부터 대학가요제, 록 페스티벌 신인 경연대회까지 일고여덟 차례 도전했지만, 본선 무대에 서본 단 한차례를 빼곤 번번이 예선에서 미끄러졌다.

2007년 연습실에서 소박하게 녹음한 미니앨범 <앵콜 요청 금지>를 내놓을 때도 상황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얼마나 팔릴까 싶어 500장을 찍을까, 1000장을 찍을까 고민했다. 반응은 더디지만 뭉근하게 다가왔다. 곧 입에서 입을 타고 눈덩이처럼 불어갔다. 1년 새 3000장을 팔았다.

보컬 덕원 모든 곡 뼈대 만들고
다른 멤버들 연주하며 살붙여

1집 때보다 음악 한층 강렬해져
“제작·유통 직접…자신감 생겨”

2008년 말 1집 <보편적인 노래>를 발표했다. 리더 덕원(베이스)이 만든 유려하면서도 정갈한 선율과 계피(보컬)의 맑고 투명한 목소리가 어우러진 파스텔톤 수채화 같은 노래들로 가득했다. 타이틀곡 ‘보편적인 노래’는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모던록 노래로 선정됐고, 앨범은 인디밴드로선 드물게 3만장이나 나갔다.

하지만 1집을 갓 냈을 당시 이들은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없었다. 음악적 견해 차이로 계피와 결별하고 소속사마저 나오게 됐다. 어느 신문에 ‘브로콜리 너마저, 무기한 활동중단’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계피를 제외한 나머지 네 명의 멤버들은 해오던 대로 꾸준히 음악을 했지만, 밖에선 밴드가 해체됐다는 소문마저 돌았어요.” 덕원은 그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역설적이게도 이런 상황이 직장·학교생활을 병행해오던 이들로 하여금 음악에 더욱 매진하게 만들었다. 1집 녹음 직전에 직장을 그만둔 덕원에 이어, 간호사로 일하던 잔디(건반)도 병원을 나왔다. 향기(기타)와 류지(드럼)는 학교를 휴학했다. 매일 서울 상도동 지하 연습실에 모여 연습하고 작업하는 일상을 반복했다. 단 주말은 쉬었다. 합주에 몰두할수록 멤버들 사이가 인간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더욱 북적거리고 끈끈해졌다.

‘스튜디오 브로콜리’라는 제작사를 손수 차리고 데모 시디(CD) <잔인한 사월>과 <브로콜리 ○마저>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여러 층위의 소리를 쌓아가는 방법을 터득해나갔다. “사실 1집 때는 준비도 덜 됐고 우리만의 소리가 정립되기 이전이라 아쉬움이 적지 않았어요. 하지만 데모 작업을 거치면서 음반 녹음과 제작은 물론 유통까지 직접 하며 수업을 치렀어요. 이후 자신감이 생겼죠.” 덕원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이런 노력은 지난달 말 발표한 2집 <졸업>으로 결실을 맺었다. 거의 2년 만에 나온 새 앨범은 전작과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1집이 계피의 보컬을 가운데 놓고 다른 악기들이 한발짝 뒤로 물러나 있는 그림이었다면, 2집에선 덕원의 보컬과 다른 악기들이 유기적으로 어울리는 밴드로서의 호흡이 훨씬 짙어졌다. 기타, 베이스, 건반, 드럼 모두 뛰어난 테크닉을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감성이 충분히 녹아든 연주를 들려준다. 무엇보다도 음악이 한층 강렬해졌다.

변화의 이유는 작업 방식에 있었다. 1집 때처럼 이번에도 덕원이 모든 곡을 작사·작곡했지만 편곡은 모든 멤버들이 충분히 협업했다. 덕원이 멜로디와 노랫말을 뼈대로 던지면 다른 멤버들이 연주를 하며 살덩어리를 붙여나가는 식이다. 이렇게 연주하는 게 재밌어서 노래가 끝난 뒤에도 후주가 1시간 넘게 이어지기 일쑤였다고 한다. 앨범에는 5분이 넘는 곡도 많다. “이것도 많이 줄인 거예요.” 향기가 웃으며 말했다.

멜로디가 아니라 메인 리프(반복악절)만 던지고 다 함께 즉흥연주를 하며 불려나가는 식으로 만든 곡도 있다. ‘환절기’다. “이번에는 단 한 곡에서만 시도한 방식인데요, 다음에는 모든 곡을 이런 식으로 만들어보려고요.” 리더 아니랄까봐 벌써부터 다음 앨범을 구상하는 덕원이다.

타이틀곡 ‘졸업’에서 이들은 노래한다. “난 어느 곳에도 없는 나의 자리를 찾으려 헤매었지만 갈 곳이 없고, 우리들은 팔려가는 서로를 바라보며 서글픈 작별의 인사들을 나누네. … 이 미친 세상에 어디에 있더라도 넌 행복해야 해, 행복해야 해.” 여기에 달콤함은 없다. 고요하지만 처절한 절규와 아픔이 있을 뿐이다. 브로콜리 너마저 2집은 상처를 헤집는다. 그럼으로써 상처를 치유한다. 지독한 역설의 약물요법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두루두루에이엠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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