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1.19 08:53
수정 : 2010.11.1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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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백치 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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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러 공동연출 연극 ‘백치 백지’
도스토옙스키의 장편 소설 <백치>가 한국·러시아 합작의 연극으로 서울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동그라미극장에서 국내 초연중이다.
새 연극 <백치 백지>는 우리 사회에 이제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는 ‘현명한 바보’에 대한 우화적인 이야기이다. 도스토옙스키가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묘사했던 백치의 눈으로 인간 세상의 타락과 더러운 욕망을 꼬집으며 인간이 갈망하는 구원이라는 근원적인 문제에 다가가려 한다.
극단 서울공장의 임형택 연출가와 러시아 연출가 안드레이 세리바노프가 공동 연출을 맡아 원작의 주요 내용을 각각 한국식과 러시아식으로 각색했다.
두 연출가는 두 나라의 서로 다른 ‘바보 문화’를 한 작품에 교차시켜 ‘현명한 바보’라는 공통된 감성을 나누려고 한다. 러시아와 한국의 전통음악과 춤, 놀이를 곁들인 점도 특색.
작품의 얼개는 때묻지 않은 순수성 때문에 ‘백치’로 취급받는 미슈킨 공작이 극 중 해설자로 나서서 아름다운 여인 나스타샤를 차지하기 위해 벌이는 러시아 지배 계층 남자들의 속물근성과 음모, 술수, 도덕적 타락, 뒤이은 비극적인 결말을 들려주는 구술 형식이다.
연출가 안드레이 세리바노프는 도스토옙스키가 “<백치>는 절대로 아름다운 인간을 묘사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절대로 아름다운 인간은 오직 한 사람뿐이다. 그는 바로 그리스도이다”라고 밝힌 작품의도를 충실히 살려 주인공 미슈킨 공작이 백치이지만 미묘한 신뢰와 사랑을 받는 구원자로서 그리스도의 의미를 부각시킨다.
지난해 알몸 연극으로 대학로에 새로운 화두를 던졌던 임형택 연출가는 미슈킨 공작과 대조되는 한국의 어느 마을에 살던 바보 ‘백지’의 짧은 삶을 연극의 한 축에 끼워넣었다. 그는 원작 소설에서 주인공 미슈킨 공작이 스위스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지병인 간질을 치료받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따돌림받는 병약한 처녀 마리를 만났던 사연을 한국의 ‘동네 바보’ 이야기로 옮겼다. 임 연출가는 그 바보가 ‘백지’ 같은 맑은 영혼 때문에 늘 구박당하는 천덕꾸러기이자 화풀이 대상이지만 없으면 궁금하고 허전한 존재로 보았다.
물질만능과 무한경쟁의 법칙이 지배하는 오늘날에 선량함과 따뜻함을 잃지 않은 사람은 오로지 백치일지도 모른다. 미슈킨 공작 같은 백치의 눈에 비친 현대인이야말로 도덕적 백치이고 미숙아라는 사실을 연극 <백치 백지>는 말하고 있다. (02)745-0334.
정상영 기자, 사진 서울공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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