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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2.10 09:09 수정 : 2010.12.10 09:09

19세기 초기 초상사진의 대가 나다르의 사진집. 1982년 델피르가 기획해 선풍을 일으킨 ‘포토 포슈’의 첫번째 시리즈다.

‘세계 최고 사진의 만남, 델피르와 친구들’ 17일~내년 2월27일

한겨레신문사 주최 순회전
스마트폰 무료앱 서비스도
델피르와 사진가들이 만든
귀한 수작 100점 원본 전시

“당신들과 손잡고 진짜 멋진 의학 잡지를 만들고 싶습니다.”

당돌한 부탁이었다. 1950년 23살의 의학도 로베르 델피르는 프랑스 파리 생토노레가에 있는 보도사진가들의 단체인 ‘매그넘’ 사무실을 다짜고짜 찾아갔다. 그가 만난 이는 ‘결정적 순간’이란 경구로 유명한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브레송과 전쟁사진의 전설 로버트 카파. 뜻밖에도 두 거장은 이 젊은이의 패기에 감동해 선선히 일해보자는 약속을 해줬다.

델피르가 편집을 맡은 프랑스 의사협회의 기관지 <네프>는 그 뒤 매그넘과 소장 사진가들의 작품이 발표되는 혁신적인 예술잡지로 거듭났고, 델피르 또한 세계적인 사진 기획자로 우뚝 서게 된다. 출판·디자인 감각이 뛰어난 이 젊은이에게 카르티에브레송은 그 뒤 그의 사진집 출판을 대부분 맡겼다. 델피르와 사진가들의 인연은 다큐사진가 로버트 프랭크, 윌리엄 클라인, 요세프 코우델카 등으로 가지를 쳐나갔다. 그들과의 협업과 전시·출판은 1960년대 이후 세계 사진계의 지형도를 바꿔놓게 된다.

‘델피르와 친구들’전 출품작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키스’로 꼽히는 로베르 두아노의 1950년작 <시청 앞에서의 키스>. ⓒRobert Doisneau/gamma rapho

매그넘과의 첫 만남이 있은 지 60년 만에 팔순을 넘긴 기획자 델피르에게 바치는 거장들의 명품 잔치가 차려졌다. 한겨레신문사와 문화방송 공동주최로 오는 17일 개막해 내년 2월27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는 ‘세계 최고 사진의 만남, 델피르와 친구들’전은 사진 전시와 출판 분야에서 ‘미다스(마이더스) 손’으로 일세를 풍미한 델피르의 사진 인생 60년을 기념하기 위해 친구인 서구 근현대 사진 거장들이 바치는 전시다. 지난해 프랑스 아를 사진페스티벌의 기념 헌정전으로 첫 테이프를 끊었고, 올 초 파리 유럽사진미술관에서 대대적인 전시를 마치고 첫 해외순회전으로 한국을 찾았다.

‘델피르와 친구들’전 출품작들. 헬무트 뉴턴의 1981년작 <그들이 온다!>. ⓒHelmut Newton

‘위대한 감사’란 타이틀도 덧붙여진 전시는 델피르의 화려한 사진계 인맥과 안목의 내공을 보여준다. 19세기 나다르의 초창기 사진부터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요세프 코우델카, 로버트 프랭크, 로베르 두아노, 자크 앙리 라르티그, 윌리엄 클라인, 헬무트 뉴턴, 세바스치앙 사우가두 등 대가들의 오리지널 프린트 사진 185점과 델피르가 출판한 150권의 사진책, 관련 영화 4편 등이 전시·상영된다. 원래 델피르와 평생 동료로 작업했던 사진가들이 서로 감사의 마음을 깔고 마련한 전시지만, 관객들에게는 광고나 잡지 등에서 너무나 친숙한 거장들의 명품 사진을 100장 이상 실물로 직접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반가울 듯하다.

전시는 네 섹션이다. 델피르 작업의 다양한 발자취를 도서관, 영화관 같은 공간적 콘셉트로 구성한 전시장에 각각 배치해 풍성한 볼거리, 읽을 거리를 즐길 수 있도록 했다. ‘1부 사진의 역사와 만나다’에서는 그가 15년간 몸담았던 국립사진센터의 사진사 초기 작품들과 그가 출판한 사진집 최고의 역작인 ‘포토 포슈’ 시리즈가 나온다. 가장 주목받는 섹션은 2부 ‘신화가 된 사진을 만나다’와 3부 ‘세기의 사진책을 만나다’다. 교분이 각별했던 카르티에브레송과 코우델카, 로버트 프랭크를 비롯해 다양한 거장들의 개성적 스펙트럼이 배어 있는 작품, 사진집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델피르와 친구들’전 출품작들. 1964년 윌리엄 클라인이 연출하고 델피르가 제작한 무하마드 알리의 영화 <위대한 캐시어스 클레이>

‘델피르와 친구들’전 출품작들.세바스치앙 사우가두의 1994년작 <르완다 난민들>. ⓒSebastiao Salgado

특히 20세기 중후반 동서양 곳곳을 돌며 인간 삶의 폭넓은 이모저모와 깊이를 담아냈던 거장 카르티에브레송의 역작들과 현대 미국 사회의 비뚤어진 자화상을 낱낱이 들춰낸 로버트 프랭크의 저 유명한 사진집 <미국인들>의 초판, 수록 작품을 볼 수 있다. 또 1968년 체코 프라하의 봄과 사라지는 집시의 일상을 기록한 사진으로 널리 알려진 코우델카의 역작들을 비롯해 무려 7권이나 델피르가 출판해준 그의 사진집이 전시된다. 1950년 파리에서 찍은 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키스 사진으로 전세계적인 연인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로베르 두아노의 <시청 앞에서의 키스>, 아프리카의 전란과 기근의 현장을 따뜻하고 유장한 휴머니즘의 시선으로 찍은 사우가두의 연작들, 헬무트 뉴턴의 도발적인 패션 누드 사진 연작들 또한 빠질 수 없는 볼거리다. 시가를 문 체 게바라의 포즈로 유명한 르네 뷔리, 지난해 9월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어 큰 호평을 받았던 델피르의 아내이자 패션사진가 사라 문, 최근 델피르가 각별한 애정을 쏟는 젊은 한국 사진가 박재승의 내면풍경까지 전시장은 유례없는 명품 수작들의 성찬이다. 이밖에 4부에서는 다큐 거장 윌리엄 클라인이 감독하고 델피르가 제작한 영화 <폴리 마구, 당신은 누구십니까?>와 팝의 전설 비틀스 멤버들과 알리가 복싱 퍼포먼스를 벌이는 <위대한 무하마드 알리> 등이 눈을 매혹시킨다.

이 전시는 지난 3일부터 스마트폰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한 무료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델피르와 친구들’ 앱을 먼저 개설했다. 전시소개, 전시장 미리보기 등의 정보를 검색할 수 있고, 입장권도 할인받을 수 있다. 성인 1만원, 청소년 8천원. (02)710-0762.

로베르 델피르는

세계 사진·출판 기획의 ‘미다스’

로베르 델피르. ⓒSarah Moon
대중들에게 사진은 어떤 존재인가? 무엇을 보고 느끼도록 해줘야 하는가?

사진 기획·출판 전문가인 로베르 델피르(82)는 이런 의문에 창조적 대안들을 제시하면서, 전시 자체도 작품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 대가로 평가된다. 도심 거리에 거대한 사진 패널을 잇따라 설치한 거리 사진전시나 전시장 벽을 물결치듯 세우기,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간이사진집 등은 그가 처음 창안해낸 것이다. 한국에선 낯선 인물이지만, 서구나 일본 등지에서는 사진 외에도 디자인·영화·광고 등에서 새 지평을 연 전방위 기획자로 이름 높다.

20대 의학도 시절 의학잡지 <네프>의 편집자로 사진계에 첫발을 디딘 그는 그 뒤 <뢰유> 등 전위적인 사진잡지를 창간했고, 숱한 사진전시를 기획하고, 다양한 영화와 텔레비전 프로그램, 광고 등을 만들었다. 앙리 카르티에브레송, 로베르 두아노, 앙드레 브르통, 로버트 카파, 피카소, 사르트르 등 쟁쟁한 예술가들의 작품을 출판했고, 현대사진사 최고 문제작 중 하나로 미국에서 출판이 좌절된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집 <미국인들>을 처음 발간해준 것도 그였다.

그의 황금기는 1982년부터 15년간 프랑스 국립사진센터 관장으로 재직했던 시기다. 당시 첫번째 사진집 시리즈 <포토 포슈>(주머니 속 사진이라는 뜻)는 누구나 시집처럼 작은 사진집을 들고 다니며 볼 수 있는 파격적 발상으로 사진 대중화 바람을 일으켰다. 1996년 국립사진센터를 나온 뒤에는 ‘포토 포슈’ 시리즈를 계속하며 아트 디렉터로 세계 곳곳의 사진 디자인 전시를 기획했다. 특히 2000년 시작한 작가 얀 베르트랑의 ‘하늘에서 내려다본 지구’ 사진전은 전례 없는 성공을 거뒀다. 2003년에는 카르티에브레송의 대규모 전세계 회고전을 기획하기도 했다. 노형석 기자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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