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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천재성, 50년 뒤에 빛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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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 델피르와 친구들] <7> 라르티크
열 살에 첫 사진 찍고 암실 작업까지 섭렵
그후 평범한 일상 살다 69살에 겹친 ‘기적’
“6번을 단 경주용 자동차가 오른쪽으로 바퀴가 휘어져라 달리고 있다.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길가에 선 사람들과 가로수들이 뒤로 휙휙 넘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바퀴가 휘어지도록 달린다는 표현과 가로수들이 뒤로 넘어지는 것 같은 표현은 실제로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워낙 빠르다 보니 그렇게 보인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은유적 표현이다.
자크 앙리 라르티크가 1912년에 찍은 이 사진엔 문학적이면서 만화 같은 모습이 실제로 찍혀 있다. 지금처럼 컴퓨터를 이용한 손쉬운 후보정프로그램도 없었던 1백 년 전의 사진이다.
1백년 전에 어떻게 이런 사진을?, 그것도 18살짜리가…
대가라고 하더라도 누구나 처음엔 초보였다. 프로작가라고 하더라도 시작할 때는 아마추어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마추어와 프로의 정의를 내리기 힘든 사진가 한 명이 있었다. 자크 앙리 라르티크(1894~1986)는 일곱 살에 첫 카메라를 받았고 열 살에 첫 사진을 찍었다. 자신의 방, 장난감 등을 찍었고 차츰 집, 정원, 가족, 거리에서 만난 여인 등으로 대상을 확대시켜나갔다. 자동차, 비행선, 비행기 등도 찍었다.
요즘 같으면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도 휴대폰카메라나 콤팩트카메라로 곧잘 사진을 찍으니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1백 년 전이라면 이야기가 크게 달라진다. 라르티크는 대형부터 35mm까지 당시 거의 모든 종류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고 1900년에 막 발명이 되었던 원시적 형태의 컬러(그러나 상태는 요즘의 컬러만큼 뛰어난)였던 오토크롬까지 섭렵했다. 또 직접 암실 작업까지 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진에 관한 모든 것을 너무 일찍 접했던 탓인지 그의 사진작업은 거기까지였다. 한두 번 잡지에 사진이 실린 것을 제외하고 나면 전시를 하거나 책을 낸 적도 없기 때문에 그의 사진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상태로 라르티크의 젊은 시절은 끝났다. 그는 그림을 그렸고 이 또한 가끔 팔리기만 했을 뿐, 직업적 화가라고 할 수도 없는 그런 평범한 인생으로 돌아갔다.
뉴욕현대미술관 사진부장, 한눈에 가치 알아차려 그가 69살이 되던 해인 1963년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뉴욕 여행길에서 사진에이전시인 ‘라포’에서 일하는 라도(Charles Rado)에게 우연히 사진을 보여주게 되는데 라도는 그 사진을 뉴욕현대미술관(MoMA)으로 연결시켜주었다. 뉴욕현대미술관이 어떤 곳인가? 1955년 지구촌의 모든 인류들에게 큰 감동을 준 인간가족전을 기획했던 사진계의 거목 에드워드 스타이켄이 사진부서의 부장으로 있던 곳이며 이 무렵엔 스타이켄의 후임인 사코우스키가 부장이었다. 한눈에 사진의 가치를 알아차렸다. “그것은 훌륭한 육상선수처럼 경제성과 우아함, 단순한 정밀성을 가지고 똑바로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마치 카르티에 브레송의 아버지가 찍은 숨겨진 초기 사진을 보는 것 같았다”라고 술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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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의 천재성, 50년 뒤에 빛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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