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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수(50·사업)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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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고 한형석 선생의 큰아들 한종수씨
“유실된 초연 악보집 찾아내고 다른작품들도 발굴할겁니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나서도 이런 작품이 있었는지 한동안 몰랐습니다. 가족 입장에서는 감격스러울 따름이죠. 한번 공연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3·1절이나 광복절 같은 날에도 공연되어 더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습니다.”
오페라 <아리랑>의 국내 초연을 지켜본 작곡가 한형석 선생의 맏아들 한종수(50·사업·사진)씨는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아버님이 70년 동안 조국에서 공연을 하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슴속에 묻어두었을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어서 너무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아버지가 좀처럼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아서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전혀 몰랐다고 털어놓았다. 그 자신도 아버지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했고 ‘압록강 행진곡’, ‘국기가’ 같은 독립군가를 작곡한 음악가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앞으로는 자식 된 도리로 <아리랑> 초연 악보집을 찾는 일에 나서겠습니다. 또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아버님의 다른 작품들도 발굴해 나갈 계획입니다. 아버님을 잘 아시는 분들이 생존해 있을 때 이 작업을 빨리 서둘러야 할 것 같아요.”
그는 내년 4월 중에 한형석 선생이 활동했던 중국 시안을 방문할 계획이다. 그 당시 시안에서 발행되었던 광복군 기관지 전신인 <한국청년>에 1940년 오페라 <아리랑> 초연 기사가 자세히 나와 있고, 악보집을 발간했다는 광고가 실려 있다고 전했다. “그 당시 <아리랑> 초연에 참가했던 한국인과 중국인 출연자 150여명 중에 누군가는 그 악보집을 분명히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동석했던 한형석탄생100주년기념사업회 차재근(52) 집행위원장은 한형석 선생이 독립운동가와 음악가로서 조명을 받고 있지만 한국과 중국의 청소년 예술교육의 선각자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한형석 선생이 아이들을 위한 예술교육이 무엇보다 필요하다며 1943년 중국 시안에 아동극장을 창설하고 산시보육원 예술학교 교장을 역임했으며, 귀국한 뒤 1953년 사재를 털어 자유아동극장 겸 색동야학원을 설립해 예술교육을 하고 2년간 500회의 무료공연을 벌여왔다”고 강조했다.
한종수씨는 최근 <아리랑> 공연을 앞두고 아버지 한형석이 ‘압록강 행진곡’을 부르시던 모습이 부쩍 꿈에 자주 나타났다고 한다. 그는 둘째딸이 할아버지의 삶을 알고 난 뒤로 “앞으로 방송국 피디를 해서 할아버지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겠다”고 하더라며 밝게 웃었다. 부산/글ㆍ사진 정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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