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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1.13 08:44 수정 : 2011.01.13 08:44

‘수염은 머리가 벗겨진 사람의 잔디다’

화가이자 건축가 ‘독특한 이력’
삶과 예술 일치 ‘토털 아트’ 추구
평화와 생태의 합일 화두 담아

‘오스트리아 가우디’ 훈데르트바서전

직선은 부도덕하다! 화가가 평생 고집한 신념 덕분에 그림들은 동화나라 꿈동산이 되었다. 모든 그림들은 구불구불하고 비뚤비뚤한 소용돌이 선과 환상적인 원색으로 물결친다. 건물은 사람처럼 피와 눈물을 흘리며, 대머리 아저씨는 잔디가 자라는 땅과 지층이 되며, 나무들은 알록달록한 사탕으로 변신한다.

‘오스트리아의 가우디’로 불리는 화가·건축가 훈데르트바서(1928~2000)의 작품들은 세상 만물의 경계를 지워버린다. 가우디 건축물 같은 구불구불한 곡선과 소용돌이치는 나선의 역동감이 따뜻한 원색의 물감층과 어울려 자연과 한몸이 된 삶을 노래한다. 그림 특유의 곡선과 색채의 천진난만한 리듬감으로 자연과 생명의 매혹을 이야기하는 그의 작품들이 한국에 찾아왔다. 지난 연말부터 훈데르트바서의 첫 한국 전시가 차려진 서울 예술의전당 디자인미술관은 입소문 듣고 찾아온 가족관객들로 붐빈다.

전시는 삶과 예술, 자연이 일치된 ‘토털 아트’를 평생 추구하며 환경운동가로도 발자취를 남긴 그의 작품 세계를 꿈결처럼 거닐며 느껴보라고 권한다. 훈데르트바서 비영리 재단과 오스트리아 쿤스트하우스빈 박물관의 소장품들을 중심으로 원작그림 60여점과 대표적인 건축 모형 8점, 그래픽 원화, 직물 공예품인 태피스트리 등이 내걸렸다.

평생 떠돌이로 살았던 훈데르트바서는 현대미술사의 특정 양식이나 사조로 분류하기 어려운 독특한 작업들을 남겼다. 굳이 분류한다면, 클림트, 에곤 실레로 대표되는 20세기 오스트리아 토털 아트의 계승자로서 삶과 하나되는 생태·자연 예술을 평생 실천해온 대가라고 할 수 있다.


화가·건축가 훈데르트바서(1928~2000)
빈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2차세계대전 당시 나치스에 의해 강제 이주당하고 친척들이 몰살되는 참사를 겪었다. 이런 기억이 평생 평화와 자연과의 합일이라는 화두를 품고서 유럽과 일본, 미국, 뉴질랜드를 돌면서 작업하는 모티브가 된다. 돼지우리를 개조한 임시작업실, ‘레겐타크’라는 자신의 전용 배 등에서 살면서 직접 만든 물감으로 아무 종이에나 그림을 그리고 일본풍 목판화를 찍었다. 70년대 시작한 건축물 설계도 자나 도면을 일체 쓰지 않고 드로잉처럼 작업했다. 원래 이름은 프리드리히 슈토바서였으나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에 흐르는 백개의 강’이라는 뜻을 지닌 프리덴스라이히 훈데르트바서로 이름을 바꾼 것이나 태평양을 떠다니는 배에서 삶을 마친 것도 생태주의 실천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전시장에 나온 1940~90년대 그의 그림들과 훈데르트바서 타워, 빈 슈피텔라우 쓰레기소각장, 쿤스트하우스빈 등의 대표 건축물 모형들은 뚜렷한 정형이 없다. 작가는 제1의 피부를 실제 살갗, 제2의 피부를 옷, 제3의 피부를 집이라고 명명하며 나선처럼 확장되는 선들을 통해 인간과 자연, 건축 이미지의 유기적인 상상력을 보여준다.

‘녹색 여인-정치의 정원사’ ‘수염은 머리가 벗겨진 사람의 잔디다’(그림) 등에 나온 사람의 모습은 몸의 근육이나 나무의 나이테를 닮았고, ‘노란 집’‘피 흘리는 건물’ 등에 보이는 집들의 창과 몸체는 작은 세포 조직 등을 떠올리게도 한다. 기하학적 규격선이 사라지고 화폭처럼 알록달록한 색감의 잔디 지붕과 올망졸망한 창 등으로 뒤덮인 화폭 같은 여러 건축물 모형들은 동화적 세계와 세기말적인 환상을 내뿜고 있다.


‘모든 것은 한없이 간단하며, 한없이 아름답다’ 등 곳곳에 붙은 그의 명상적 경구들을 되새김하는 것도 이 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3월15일까지. (02)545-3944.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예술의전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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