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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3.17 20:12 수정 : 2011.03.17 20:12

1882년 임오군란 당시 일본 작가의 우키요에풍 ‘조선사건 왕성 후궁도’. 대원군이 독배를 들고 왕비와 세자비를 자결시키는 사이 궁 바깥 일본 공사관원들이 폭도(조선군)를 쳐부수며 왕성을 빠져나가는 장면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임오군란을 소재로 한 당시 일본 소설의 허구적 내용을 그린 작품이다. 삼성미술관 리움 제공

리움의 ‘코리안 랩소디’전
일본 기록화·사진·다큐물 통해 입체적 조명
서용선·박생광·강요배 등 역사 해석 돋보여

이 그림들은 우리에게 비극이었지만, 그네들에겐 국력 과시의 한순간이었을 것이다. 잔뜩 과장한 필치로 1882년 조선의 임오군란(명성왕후 정권의 차별에 맞서 구식군인들이 대원군을 앞세워 일으킨 정변)을 묘사한 당시 일본 목판화의 상상력은 엽기적이다. 궁궐에서 사무라이 같은 대원군이 기모노 입은 명성왕후에게 독배를 주며 자결을 강요한다. 궁 밖 일본 외교관들은 일장기 휘날리며 조선 병사들을 무찌른다. 조선 지배의 노골적 욕망이 얼비치는 장면이다. 왜소한 조선 왕을 사이에 두고 청군과 담판하는 일본 장교, 청·러시아군을 쳐부수며 한반도 벌판을 내달리는 일본군 그림도 낯설다.

지난 17일 개막한 서울 한남동 삼성미술관 리움의 기획전 ‘코리안 랩소디-역사와 기억의 몽타주’에는 일본의 조선 침략 과정을 극적으로 담은 우키요에(다색 목판화)풍 기록화 16점이 처음 나왔다. 조선의 정변과 청일전쟁, 러일전쟁 전황을 윤색한 이 판화들은 이미지 조작이 역사적 시공간의 기억들을 얼마나 변질시킬 수 있는지 증언한다.

‘코리안 랩소디’전은 작품 대신 역사적 이미지들을 몽타주한 전시다. 일본 목판화들을 비롯해 구한말부터 2000년대까지 이땅의 미술품과 사진, 영상, 기록 등을 모아 지난 100여년간 우리 역사가 시각문화에 남긴 흔적들을 짜깁기한다. 기획자 이준 부관장은 “소장품 틀을 벗어나 우리 근현대사가 반영된 다채로운 시각 이미지들을 모아서 재구성한 첫 시도”라며 “격동의 역사가 시각 인식에 미친 영향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선 20세기 초 옛 작품들과 당대 여러 시각물들을, 역사적 상황을 재해석한 현대 작가들의 근작들과 뒤섞어 배치했다는 점을 특기할 만하다. 1부 ‘근대의 표상’에서 이런 특징이 두드러져 보인다. 농민 항쟁 장면을 강렬한 색감으로 재구성한 서용선씨의 ‘동학농민운동’(2004)과 시해돼 쓰러진 명성황후를 상상해 그린 박생광의 채색화(1983) 등이 1920년대 사진처럼 그린 김은호의 ‘순종어진’, 국권 상실 뒤 서울 광화문 일대 풍경화인 안중식의 ‘백악춘효’(1915), 일본 목판화 진열장 등과 마주 보며 시선의 충돌을 빚어낸다. 여기에 1890년대, 1930년대 서울 거리 모형을 내레이션과 함께 훑는 작가 정연두씨의 영상물 ‘구보씨의 일일’이 끼어든다. 더 안쪽으로는 저항시인 이육사의 난초 그림, 1930년대 이인성의 향토색 그림, 나혜석, 오지호의 누드화들이 20년대 만평을 확대해 그린 현대작가 이동기씨의 팝아트 작품과 나란히 내걸렸다. 당대 최고 무희 최승희의 노래 육성이 깃든 춤 동영상도 어우러진다.

해방 뒤 시각 문화를 정리한 2부 ‘낯선 희망’에는 리움에서 보기 힘들던 참여미술 작품들이 많다. 들머리는 해방기의 혼돈과 희망을 뒤엉킨 군상화로 표출한 이쾌대의 1948년작 ‘해방고지’, 푸른빛 한라산과 벌판을 배경으로 제주4·3항쟁 현장을 재현한 강요배씨의 1992년 대작 ‘한라산 자락 사람들’이 눈을 압도한다. 외세가 침탈한 역사 현장들을 모자이크한 신학철씨의 ‘한국근대사-종합’과 70~8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을 담은 여러 보도사진들이 가쁘게 뒤를 잇는다. 전시는 2000년 남북정상회담 전후과정을 다룬 박찬경씨의 다큐 영상 ‘비행’, 21세기 소비문화를 풍자한 김기라씨의 ‘코카킬러’ 네온 설치물까지 훑은 뒤 가짜보석줄을 늘어뜨린 최정화씨의 거울공간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 종점을 찍는다.

근현대사를 관통한 숱한 이미지 숲을 지나면 전시 초점이 무엇일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색다른 미술사인지, 시각 이미지의 역사적 재구성인지, 핵심은 명쾌하게 잡히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거대 주제로 파격적 전시 구성을 꾀한 기획자에겐 필연적으로 부딪히는 한계이겠지만, 남아 있는 근대 시각문화 자료들이 턱없이 빈약한 미술계의 현실을 이 전시는 곱씹어보게 만든다. 6월5일까지. (02)2014-6900.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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