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4.07 19:21
수정 : 2011.04.07 19:21
|
연극 <나는 너다>
|
‘그대의 봄’ 방은미, 감성적 면모 다뤄
‘나는 너다’ 윤석화, 가족사 비밀 들춰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1909년 10월26일 아침 중국 하얼빈역에 6발의 총성이 울려 퍼졌다. 조선 식민지화를 꾀하던 일본 제국주의의 영웅 이토 히로부미가 쓰러졌고 러시아어로 “대한 만세” 삼창을 한 서른두살 청년 안중근은 체포된다. 이 사건을 일본 역사는 “총 잘 쏘는 포수가 잘못된 애국심으로 저지른 살인행위”라고 비하했고, 우리 역사는 ‘하얼빈 의거’로 기록했다. 그러나 그게 안중근의 전부일까?
지난 100년간 영웅 신화의 틀에 갇혔던 안중근을 뜨거운 가슴을 가진 인간으로 새롭게 자리매김하는 연극 두편이 4~5월 잇따라 공연된다. 오는 29일부터 5월8일까지 서울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동그라미극장에 오르는 <그대의 봄>과 5월17일~6월6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하는 <나는 너다>다. 지난해 서울·지방 공연에서 호평을 받아 앙코르 무대에 오른 두 작품은 모두 여성 연출가들의 섬세한 눈으로 오랜 세월 드러나지 않았던 인간 안중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해보다 무대가 훨씬 크고 풍성해진데다, 특별한 무대 장치 없이 빛과 영상, 음악만으로 전하는 메시지도 강렬해졌다.
|
<그대의 봄>
|
<그대의 봄>은 사람을 몹시 좋아하고 감성적이며 마음 여린 서른두살 남자 안중근의 속살 같은 이야기다. 안중근은 자서전에서 번호를 붙여가며 ‘술 마시는 것’, ‘노래하고 춤추는 것’, ‘좋은 벗 사귀는 것’, ‘사냥하는 것’, ‘말 타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런 심성을 지닌 안중근이 우덕순, 조도선 등과 거사를 일으키고 뤼순감옥에서 사형당하는 과정을 극은 또다른 시선으로 톺아간다. 원로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김의경씨의 원작 <대한국인 안중근>을 연출가 방은미(극단 나비 대표)씨와 배새암 작가가 ‘인간미 넘치는 인생’으로 새롭게 각색했다.
방은미 연출가는 “안중근이 어떤 마음을 가진 사람인가에 초점을 맞춰 알려지지 않은 자서전 행간을 들춰내려 했다”고 설명했다. 정재진, 오광록, 송영창, 추상록, 장재승씨 등 영화와 드라마, 연극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은 인기 배우들이 모처럼 한자리에 모였다. 거사 전후 모든 장면에 끊임없이 관객들을 끌고 들어가면서 극적 체험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이 연극의 매력이다. 1544-1555.
<나는 너다>(정복근 작, 윤석화 연출)는 민족 영웅의 그림자에 묻힌 안중근 가족사의 어두운 비밀을 들춰낸 불편한 역사극이다. 아버지 안중근과 달리 친일파로 지탄받은 둘째 아들 안중생의 존재를 끄집어냈다. 부친의 거사 뒤 일본에 사죄한 안중생은 호랑이 같은 아비에 개 같은 아들이라는 세간의 비난을 받았다. 우리 역사는 그를 배신자, 변절자로 기록하고 어둠 속에 가둬놓았다. 이 작품은 중생의 시각에서 본 아버지의 이야기인 동시에 영웅을 아버지로 둔 아들의 비애를 다루고 있기도 하다. 어쩌면 안중근과 안중생의 상반된 삶은 우리 역사의 두 얼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극은 일러준다.
지난해 7월 초연 당시 안중근과 안중생의 1인2역을 맡아 관심을 모았던 배우 송일국씨를 비롯해 노배우 박정자, 배해선씨 등 초연 배우들이 다시 무대에 선다. 항일 무장투쟁의 영웅 김좌진 장군을 외증조부로, ‘장군의 아들’ 김두한을 외조부로 둔 송일국씨가 ‘장군의 아들’ 안중생의 질곡된 삶을 연기로 펼쳐낸다는 것이 의미심장하다. 그 또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02)580-1300.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극단 나비·서울 예술의전당 제공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