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5.10 19:56
수정 : 2011.05.10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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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교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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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교사형’
무대는 사형 집행장. 죄수의 목을 매단다. 의사는 죄수 R의 심장이 멎었는지 확인한다. 살아 있다. 교도관들은 당황한다. 재집행을 해야 하는데 R는 자기가 누군지, 어떤 죄를 저질렀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백지 상태의 사람을 사형시킬 수는 없는 노릇. 사형 집행관들은 R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자기가 누군지도 기억 못하는 R에게 재판 기록을 불러주며 살인 행위를 재현하게 하고, 직접 R의 가족을 연기하면서 가난한 재일한국인 R의 정체성을 깨닫게 하려 한다.
<교사형>은 일본의 명감독 오시마 나기사의 1968년 작 영화를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영화는 1958년 일본인 여학생 두 명을 살해한 혐의로 사형당한 재일한국인 이진우의 실화를 바탕으로, ‘사형이 집행된 후에도 그가 살아났다면’이란 가정 아래 만들어졌다. 당시 미성년자 이진우에 대한 재판은 충분한 증거 없이 자백만으로 진행됐고, 그가 22살이 되던 62년 사형이 집행됐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이 사건을 해방 뒤에도 계속된 재일한국인 차별의 사례로 지적한다. 연극은 영화의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되 구도를 단순화시켰다. 재일한국인에 대한 차별, 국가 폭력, 극우적 사회 분위기 등을 총체적으로 다룬 영화의 메시지를 사형 제도의 폭력성에 대한 풍자로 집중시킨 것이다.
2시간짜리 영화 내용을 연극은 70분으로 줄였다. <교사형>이 첫 작품인 배우 겸 연출가 윤복인씨는 “국가란 실체에 대해 묻고 싶었다”고 했다. “연극에서 ‘검사’로 대표되는 상위 1% 엘리트들이 제도라는 명분을 빌려 다수 개인을 억압하는 게 국가의 부조리한 실체일지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그는 연출 의도를 밝혔다.
블랙 코미디를 표방한 연극은 군데군데 유머를 섞어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내용을 부담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전달한다.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극중 상황을 한정된 공간에서 조명과 소품을 활용해 효과적으로 표현한 점이 눈에 띈다. 하지만 “사형도 살인이다, 국가의 폭력이다”란 간명한 주제가 관객에게 울림을 주기는 조금 부족해 보인다. 배우의 직접적 대사로 전달되는 메시지는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잘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 첫 장면부터 언젠간 나올 거라고 예상 가능했던 대사를 그대로 내뱉는다는 느낌이다. 섬세한 캐릭터와 치밀한 구성을 통한 자연스런 부조리 표현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22일까지 서울 동숭동 정보소극장. (02)764-7462.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사진 극단 풍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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