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06.05 20:32
수정 : 2011.06.08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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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술의 흐름을 보여주는 최대 미술축제인 제54회 베니스 비엔날레가 4일(현지시각)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빛’을 주제로 시작됐다. 비엔날레의 핵심인 아르세날레 본전시관의 모습. 한국관은 이용백씨가 단독 대표작가로 ‘사랑은 갔지만 상처는 곧 아물겠지요’를 주제로 10여점의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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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비엔날레 가보니
빛 뜻하는 ‘일루미네이션’ 주제
인간 능동적 지적 사고에 초점
인류 악행 성찰하는 작품 두각
지금 베네치아는 거대한 미술 전시회장이다. 세계 현대미술의 최대 축제인 제54회 베니스비엔날레가 4일(현지시각) 막이 올랐다. 11월27일까지 반년 가까이 열리는 이번 비엔날레에는 역대 최다인 87개국이 참가했다.
스위스 출신 미술사가 겸 기획자인 총감독 비체 쿠리거(63)는 ‘빛’ 또는 ‘계몽’을 뜻하는 ‘일루미나치오니’(일루미네이션)를 올해의 주제로 내세웠다. 지난 53회 비엔날레의 주제 ‘세계만들기’가 구조적인 창의성에 방점을 두었다면 이번에는 인간의 능동적인 지적 사고가 어떻게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왔는지 조명하는 데 초점을 맞춘 셈이다.
비엔날레의 핵심인 본전시를 기획한 쿠리거는 모두 83명의 작가를 초청했다. 그리고 이들에게 ‘예술의 커뮤니티는 하나의 국가인가?’, ‘만약 예술이 하나의 국가라면 그 헌법에는 무엇이 적혀 있을 것인가?’ 등 5가지 질문지를 보냈다.
쿠리거가 선택한 작가들을 보면 지난해 타계한 독일의 지그마어 폴케와 신디 셔먼, 제임스 터렐 같은 거장들부터 최연소 작가인 러시아의 27살 신예 아냐 티토바까지 다양하다. 이탈리아의 마우리치오 카텔란, 영국의 마틴 크리드, 중국의 쑹둥, 미국의 크리스천 마클레이 등 세계 여러 비엔날레에 단골로 초대받는 중견들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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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힌 탱크 위에 달리기 기계를 설치해 미국 체조 국가대표 선수들이 뛰는 설치미술 <전쟁 기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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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출신의 신예 작가 우르스 피셔(38)는 양초로 거대한 그리스 조각과 인간, 의자 등을 만들고 심지에 불을 붙여 녹아내리는 설치미술로 서구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표현했다. 크리스천 마클레이는 5000여편의 영화에서 시계가 등장하거나 시간을 알리는 장면을 편집해 과거의 시간이 되풀이되는 것을 짚은 24시간짜리 영상 <시계>로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올해 초 서울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한국 관객들에게도 선보였던 작품이다. 중국의 쑹둥은 여러 집을 조합한 작품을 선보였다. 자본주의 상품의 매혹과 폐기처분된 쓰레기의 양면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주제가 선명한 본전시와 달리 국가관들은 자율적으로 전시를 구성했다. 윤재갑 커미셔너가 국내외에서 활동중인 이용백씨를 단독 대표작가로 선정한 한국관은 ‘사랑은 갔지만 상처는 곧 아물겠지요’가 전시 주제다.
이용백씨는 꽃무늬 군복을 건물 밖에 내건 설치 작품과 꽃밭에서 꽃무늬 군복을 입은 군인이 천천히 행군하는 영상작품 <앤젤 솔저>를 비롯해 조각, 설치, 평면 등 10여점을 선보였다. 한국관 전시는 2일 개관한 이후 여러 미술관계자가 방문하면서 현지에서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프랑스 일간지 <르몽드>는 “전체적으로 진지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이번 비엔날레에서 베스트 국가관은 스위스와 대한민국”이라고 꼽고 “그중에서도 최고 작품은 이용백의 <앤젤 솔저>와 그 퍼포먼스였다”고 극찬해 현지에서 화제가 됐다.
국가관 중에서 미국과 영국, 독일, 체코, 폴란드, 이스라엘, 스페인, 이탈리아 등이 인기가 높다. 특히 ‘영광’(글로리)을 주제로 내건 미국관에서는 뒤집힌 탱크 위에 달리기 기계를 설치해 미국 체조 국가대표 선수들이 뛰는 설치미술 <전쟁 기계>(작은 사진)에 관람객들의 발길이 몰렸다. 독일관은 지난해 작고한 크리스토프 슐링겐지프의 대규모 설치미술 ‘공포의 교회 대 내부의 외계인’ 등의 작업을 전시하며 ‘최고의 국가관 전시’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이스라엘관은 성경에 나오는 약속의 땅 에덴으로 가는 여정 중간의 여러 사건을 재현한 작품이 눈을 끈다. 해변에 칼을 꽂고 아이들의 땅따먹기 놀이하듯 자기 땅으로 만드는 모습은 현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 분쟁과 맞물려 ‘약속된 땅’을 차지하려는 폭력을 암시한다.
독립 큐레이터 이진명씨는 “이번 비엔날레는 정체성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에 대한 불안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조짐들과 인류가 역사과정에서 저지른 악행에 대한 성찰을 캐묻는 작품들이 두드러졌다”고 평했다.
이번 비엔날레는 너무 많은 작품을 한꺼번에 보여줘 관객들이 부담스러워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한텐 비엔날레의 중심인 본전시에 한국 작가가 포함되지 않은 점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동시대의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문화담론에 조응하면서도 고유한 문화적 특수성을 보여주는 작가의 발굴과 국가 차원의 전략적인 홍보·지원이 여전한 숙제인 것이다.
베네치아/글·사진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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