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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6.07 20:53 수정 : 2011.06.07 20:53

젊은 연출가 셋이 1940년대 일본, 1960년대 한국, 1980년대 미국의 단편소설을 연극으로 빚는다. 연극 <단편소설 극장전>을 통해 다자이 오사무, 김승옥,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을 극화하는 박지혜, 전진모, 민새롬(위부터)씨.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극장전’ 연출가 박지혜·전진모·민새롬
김승옥 ‘서울 1964년 겨울’
다자이 오사무 단편 3선
카버 ‘코끼리’ 등 명작들
“덜어냄으로 정수 담아내”

혼자 ‘읽는’ 소설을 함께 ‘보는’ 연극으로 옮긴 세 편의 작품이 연이어 무대에 오른다. 자기만의 공간에서 읽은 소설을 80여명이 모인 극장에서 보는 건 어떤 느낌일까.

8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서교동 산울림소극장에서는 <단편소설 극장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일본, 미국의 단편소설이 연극으로 공연된다. 8~12일 김승옥의 <서울 1964년 겨울>(극단 제12언어연극스튜디오, 연출 전진모)을 시작으로, 15~19일엔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 세 편을 한데 엮은 <개는 맹수다>(극단 양손프로젝트, 연출 박지혜), 22~26일엔 레이먼드 카버의 <코끼리>(극단 청년단, 연출 민새롬)가 공연된다.

세 작품은 유명 소설가의 단편소설로 만들었다는 점 외에, 연극무대에 갓 뛰어든 신진 연출가들의 작품이라는 공통점도 있다. 전진모(30)씨와 박지혜(26)씨는 이번이 첫 연출이고, 민새롬(31)씨는 두 번째다. ‘단편소설 극장전’은 전씨와 민씨의 술자리에서 시작됐다. 각자 속한 극단이 올해 단편소설을 연극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여기에 역시 단편소설 극화를 준비하던 극단 양손프로젝트가 가세했고, 산울림소극장의 임영웅 대표가 극장을 대관해주기로 하면서 기획이 완성됐다. 지난 4일 홍대 근처 산울림소극장의 카페에서 세 연출가를 만났다.

세 사람은 단편소설과 연극의 닮음에 주목했다. “단편소설과 연극은 짧은 순간을 향해 집약적으로 달려가는 점이 비슷해요.”(박지혜) “짧은 호흡에 문장을 담아 겹이 촘촘한 단편소설과 시공간이 제한된 연극이 닮은 점이 있어요. 뭔가를 덧붙이는 작업이 아니라 덜어내는 거예요. 정수만 표현한달까요.”(민새롬)

<서울 1964년 겨울>은 ‘나’와 ‘안’과 ‘사내’가 하룻밤 동안 선술집, 화재 현장, 여관 등을 다니며 나누는 이야기로, 당시 젊은이들의 냉소와 허무를 그리려 했다. 연출자 전진모씨는 원작에 손을 거의 대지 않았다. “연극적인 면이 많은 소설이라고 생각했어요. 우스꽝스러우면서 슬프기도 한, 묘하게 공존하는 정서도 그렇고 공간이 품는 냄새도 연극적인 냄새가 많이 난다고 봤고요. 1960년대가 배경이지만, 그 시대의 특수한 이야기가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이 있어요.”

박지혜씨가 연출하는 <개는 맹수다>는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 <황금 풍경>, <축견담>, <직소>를 엮은 작품이다. <황금 풍경>은 어린 시절 괴롭힌 가정부의 방문을 받게 된 남자에 대한 이야기, <축견담>은 개를 증오하는 남자가 기르던 개를 독살하게 되는 사건, <직소>는 주인이자 스승인 사람을 죽여달라고 호소하는 남자의 일화다. 세 명의 배우가 <황금 풍경>에서는 세 개의 자아로, 나머지 둘에선 한 명의 화자와 두 명의 코러스로 배역을 나눈 독특한 형식을 취한다. “흔히 다자이 오사무 하면 떠오르는 비관, 자기혐오와는 조금 달라요. 결혼을 하고, 안정적 상태의 다자이 오사무가 쓴 중기 단편들이죠. 절망보다는 살려는 의지가 담겨 있어요.”(박지혜)

민새롬씨는 대학 때 자취방에서 같이 살던 후배가 갖고 있던 제본된 소설로 처음 레이먼드 카버의 <코끼리>를 접했다. 소설 <코끼리>는 가족 안에서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당한 한 남자의 독백인데, 민씨는 인물 이름과 지명 등을 한국식으로 바꿨다고 했다 .“카버는 잡지사에 글을 쓰면서 돈을 벌었는데, 마감을 맞추려다 보니 호흡이 짧아진 거죠. 쉽고 간결한 문장 안에 격정적인 변화들이 숨어 있는 게 흥미로워요.” 1인극이라 지루해질 수도 있을 텐데, “남자가 왜 말을 지루하게 하는지 사람들이 궁금해했으면 좋겠다”며 독백의 지루함과 먹먹함을 보여주고 싶단다.


그 자체로 완결적인 단편소설을 무대로 옮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민씨가 소설 문장의 확장 가능성이 무대에서는 제한된다는 어려움을 털어놓자, 전씨는 단편이라 해도 희곡보다 훨씬 설명적인 소설의 언어를 무대 언어로 다루는 고충을 들려줬다. “워낙 훌륭한 단편 작가들이니까 문장이 효율적이고 간결하고 압축적이고 깐깐해요. 독자들은 내면의 목소리로 읽고, 확장의 여지가 많은데, 연극 관객들은 하나의 방향으로 만든 한번의 무대를 봐요. 더할 수도 뺄 수도 없는 대사로 표현하는 게 어렵죠.”(민새롬) “희곡은 말 사이에 설명이 없는데 소설은 ‘그가 말했다’처럼 설명이 붙죠. 소설을 연극으로 옮기는 건 빽빽하게 주어진 걸 들어내는 일이에요.”(전진모)

이들은 또 소설과는 다른 연극만의 매력을 분명하게 짚었다. “모든 창작은 말 걸기라고 생각하는데, 연극은 보다 직접적인 말 건네기인 것 같아요. 살아 있는 사람이 앞에서 내 표정을 보고 말을 하잖아요.”(전진모) “독자와 소설가는 그 순간 같이 살 순 없지만, 관객과 연출가는 함께 살아요. 나랑 다자이 오사무는 같이 살 순 없는데, 내가 만든 연극이 공연될 때 나랑 관객은 같이 살잖아요. 시간을 공유하고 있으니까요.”(박지혜)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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