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페이스 오뉴월의 공동운영자들이 서울 성북동 전시공간에 함께 모여 있다. 왼쪽부터 서준호 대표, 김새미(미술기획), 배문화(디자인), 김범서(경영)씨.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
성북동 ‘스페이스 오뉴월’
젊은 큐레이터 4인 “지역-도시-나라 다양한 대화 꿈”
첫 전시 ‘…리콜 더 시티’ 사라진 공간 폐목으로 재현
미술 이론을 전공한 20~30대 기획자들이 색다른 얼개의 ‘독립 예술 실험실’을 꾸렸다.
지난 6월 서울 성북동 언덕에 문을 연 작은 전시공간 스페이스 오뉴월은 ‘사회와의 소통’, ‘예술과의 대화’를 꿈꾸며 미술계 새판 짜기를 꿈꾸는 다섯 기획자들의 거점이다. 공동 운영자인 큐레이터 서준호(32), 김범서(32), 김새미(27), 배문화(25)씨가 그들이다.
“우리 공간은 큐레이팅을 실험하는 곳입니다. 다양한 장르와 연령, 매체, 시대가 어우러지는 플랫폼을 지향하죠. 모든 전시는 자체 기획전이나 협력 기획전으로 구성되며 대관 전시는 절대 사절입니다. 또 워크숍, 프로젝트, 세미나, 시사회 등도 같이 하면서 지역 사회와 도시, 나라 사이의 다양한 소통을 꿈꾸려고 합니다.”
서준호 대표는 스페이스 오뉴월을 소개하면서 “열린 공간으로서 도시-문화-이미지를 매개하고, 도시 속에서 사회와 소통하고 예술과 대화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전시장 이름인 오뉴월은 오월과 유월을 아울러 이르는 순우리말이자 ‘오뉴월 하룻볕’의 한여름을 뜻하기도 한다. 디자이너 배문화씨는 “한국 역사에서 오뉴월에 5월 광주 항쟁, 6월 항쟁 등 중요한 사건들이 많이 벌어졌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은 뜻도 담고 있다”고 말한다.
5평 남짓한 전시장에서는 개관을 기념해 첫 전시로 ‘기도(記都)하다-리콜 더 시티’가 24일까지 열린다. 참여작가는 김영경·김영봉·박용석·송성진·안세권씨. 이 다섯명의 젊은 작가들은 지금은 없어진 서울 옛 동대문운동장과 청계고가, 무허가 판자촌 등의 아픈 기억을 환기시키는 작업을 펼쳐놓았다.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져가는 도시 공간의 모습을 폐목으로 재현한 미니어처, 기록 사진, 영상물 등 19점을 전시장의 벽과 바닥에 선보인다. 도시가 품은 사람들의 삶의 기억과 흔적을 좇는 작품들이 공통된 주제로 얽혀 있다. 동시대 예술가로서 치열한 작가 정신을 보여주는 작품들에 주목해 기획한 전시라고 한다.
오뉴월이 자리잡은 서울 성북동은 고급 주택가로 알려진 곳. 하지만 최근 젊은 미술인들 사이에서 이태원, 문래동 등과 함께 새 대안예술지대로 부각되면서 전시장들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서울 인사동, 사간동 화랑가나 홍대 앞 거리 등이 2000년대 이후 관광유흥지나 쇼핑가로 변질된 만큼 성북동을 새로운 대안미술 실험의 본산으로 만들어보려는 게 오뉴월 운영자들의 바람이다. 경영을 전공한 덕에 전시장 살림살이를 도맡은 김범서씨는 “다양한 예술 현장의 시민 참여를 통해 예술의 대중성과 공공성을 확산시키는 것도 스페이스 오뉴월의 몫”이라고 말한다.
현재 이들은 좁은 전시공간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주변 지역을 전시장으로 활용하는 작업과 함께, 외부 기획 전시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현재 서울 견지동 스페이99와 사직동 복합예술공간 에무에서 열리고 있는 4대강 사업 풍자 전시회 ‘강 같은 평화’(7월24일까지)는 오뉴월의 외부 기획 프로젝트로 눈길을 모았다. 김새미씨는 “앞으로 유능한 지방 작가를 발굴해 서울에서 전시하는 일과 해외 작은 공간들과 연대하는 작업에 욕심을 내고 싶다”고 했다.
서울 화랑가의 변방인 성북동 작은 공간을 기반으로 지역사회와 도시, 나아가 세계를 큐레이팅하려는 젊은 기획자들의 실험이 기대된다. (070)4401-6741.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