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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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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 ‘와이 위 페일’ 낸 이승열
밝은 2집보다 묵직한 1집 닮아
장르 넘나드는 사운드 실험
“슬프면서도 아름다웠으면…”
내달 24일까지 장기공연도
무슨 올림픽도 아닌데, 이 남자 음반 내는 게 꼭 4년 주기다. 1990년대 중반 시대를 앞서간 명반을 두장 남기고 사라진 모던록 밴드 유앤미블루를 새삼 언급할 필요도 없다. 2003년 발표한 솔로 1집 <이날, 이때, 이즈음에>와 2007년 내놓은 2집 <인 익스체인지>는 음악깨나 듣는 이들 뇌리에 그 이름 석자를 아로새겼다. 2008년 문화방송 <음악여행 라라라> 첫회에서 원더걸스 ‘노바디’를 록 버전으로 부른 뒤론 더 많은 이들이 그 이름을 기억하게 됐다. 이승열, 그가 4년 만에 3집 <와이 위 페일>로 돌아왔다.
지난 몇년 새 평단과 음악 팬들 사이에서 이승열 3집은 늘 관심사였다. 모던록에다 재즈·블루스 어법까지 녹여낸 작가주의 성향의 1집 이후, 그는 2집에서 대중에게 한발짝 더 다가가려는 시도를 했다. 하지만 음악적 면에선 1집에 못 미친다는 게 중평이었다. 이 때문에 3집의 향방은 더 큰 궁금증을 자아냈다. 장막을 걷고 나온 3집에 대한 대체적 평가는 밝고 매끄러운 2집보다 어둡고 묵직한 1집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승열 자신도 이에 동의한다.
“1집 이후 나름 제 음악을 좋아해주는 분들이 있구나 하며 자신감을 찾았을 당시 주변에서 ‘2집이 중요하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주위의 조언을 받아들여 2집은 덜 거칠고 더 밝게 갔어요. 그런데 이후 공연에선 2집 곡들을 잘 안하게 되더라고요. 나부터 그 분위기를 좋아하지 않았던 거죠. 이럴 바에야 다음엔 대중이 뭘 좋아하고 싫어할지 고려하지 말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믿고 가보자 하는 마음가짐으로 만든 게 3집이에요.”
원래 3집 방향은 크게 두 가지였다고 한다. 2009년 윤상과 일렉트로닉 프로젝트 그룹 모텟을 결성했던 디제이 카입(이우준)과 손잡고 차갑고 강렬한 전자음악 요소를 도입하는 게 한 축이고, 이번 앨범 수록곡 ‘솔직히’로 대표되는 어쿠스틱한 분위기가 다른 한 축이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두 성격을 한 앨범에 뒤섞기는 곤란해 일렉트로닉 도입은 다음으로 미뤘다고 했다.
모던록, 재즈, 포크, 블루스는 물론이고, 심지어 시디에만 수록된 10분 분량에 이르는 히든 트랙에서 사이키델릭까지 넘나드는 이번 앨범 편곡은, 지난 열달 동안 여러 무대에서 신곡들을 미리 선보이며 다양한 방식으로 실험한 끝에 완성한 것이다. 기타나 건반의 화려한 솔로를 내세우기보다는 밴드 전체 합주의 강약 조절로 즉흥성을 살렸다.
이승열은 자신의 음악이 “슬프면서도 아름다웠으면 좋겠다”고 했다. 3집 타이틀곡 ‘돌아오지 않아’에선 슬픔 속의 아름다움을, 앨범에 앞서 선공개한 ‘라디라’에선 경쾌함으로 감싼 슬픔을 표현했다고 했다. 그는 “내 음악에 특정 장르의 제한을 두고 싶지 않다. 그저 아티스트의 이름만으로 연상이 되는 그런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승열의 음악은 대중적이지 않다’는 일부 평가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할까? “전위음악도 아닌데, 대중적이지 않다니요. 다수 대중과 소통하려고 아등바등하진 않지만, 소수일지언정 저를 좋아하고 이해해주는 분들과 깊게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을 무슨 배경음악쯤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진지하게 듣는 분들과 소통하는 한 대중성이 있네 없네 하는 평가는 제게 의미 없는 것 같아요.”
이승열은 지난 25일부터 새달 24일까지 서울 서강대 메리홀 소극장에서 한달 장기공연을 벌이고 있다. 첫날 찾아간 공연장에서 그는 객석 한가운데 자리한 무대에 올라 별다른 멘트 하나 없이 정말 우직하게도 3집 수록곡 1번부터 12번까지 차례대로 노래했다. 낯설 법도 하건만, 관객들 상당수가 촉촉한 눈가를 하고선 공연장을 나섰다. 그가 말한 소통이 이런 것이었으리라.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플럭서스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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