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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째를 맞은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아래 사진). 위 사진은 이지나 프로듀서(왼쪽)와 이유리 연출가(오른쪽). (주)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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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나 프로듀서·이유리 연출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
가정폭력·중년의 고민 다뤄
일본에 위안부 사과 요구도
“성을 넘어 인간에 대한 얘기”
세 배우 수다에 게스트 보태
14일 서울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의 1000번째 수요집회가 열린다. 약 20년의 세월 동안 대답을 듣지 못한 물음은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에서도 비슷하게 던져진다.
29일까지 서울 신당동 충무아트홀 소극장블루에서 공연하는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후반부, 자연스레 자기 이야기를 하고 사연을 읽으면서 연기하던 세 명의 배우들은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 일본 정부의 사과를 요구한다. 이 연극이 가장 뜨거워지는 순간이다. 2001년 초연 이래 올해로 10년째를 맞은 이 스테디셀러 연극에 올해 새롭게 추가된 내용이다. 여성의 성기를 당당히 내건 용감한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공연 때마다 형식과 내용이 새롭게 바뀐다.
연극 공연권을 가져와 쭉 연출을 맡다가 올해는 프로듀서로 직함을 바꾼 이지나(47) 뮤지컬 연출가와 올해 공연의 연출을 맡은 이유리(47) 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를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사회 상황에 맞춰서 진화해 온 것 같아요. 점차 남자 관객들도 보러 오게 됐고요.”(이유리)
“예전엔 관객들이 잘 모르고 왔다가 충격받기도 했는데, 이제는 같이 웃고 즐겨요. 하지만 아직까진 남자 관객은 거의 안 와요.”(이지나)
두 사람은 1997년 처음 만났다. 영국 유학을 막 끝내고 돌아온 신출내기 연출가와 신진 기획자는 이제 각각 연출가와 평론가로 공연계에서 입지를 굳힌, 손꼽히는 여성 전문가들이 됐다. <헤드윅>, <그리스>, <광화문연가>, <아가씨와 건달들> 등을 연출한 이지나는 공연마다 흥행한, 스타 연출가다. 90년대 초중반 공연계 ‘1호 여성기획자’였던 이유리는 최근 주로 평론 활동을 하며 기획과 연출을 오가는 공연계 ‘멀티플레이어’로 활약중이다.
“10년 동안 연출을 하다 보니까 변화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호탕한 성격의) 저와 달리, 좀더 섬세한 성격의 이유리씨가 잘할 것 같아서 전화를 했죠.”(이지나)
“공연계에 우리 나이대의 여성들이 거의 전무해요. 그래서 더 각별하기도 하죠. 2, 3년 전부터 ‘같이 뭘 해보자’고 종종 이야기했고요.”(이지나)
여배우 한 명이 무대에서 독백하고 사연에 따라 연기하던 ‘모놀로그’ 버전에서는 무겁고 날선 느낌이 강했다. 그러다 2009년 당시 뮤지컬 <맘마미아>의 세 주역 최정원, 전수경, 이경미가 출연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는 ‘트라이얼로그’ 형식으로 바뀌면서 공연 분위기가 훨씬 밝고 따뜻해졌다. 김여진(정애연과 번갈아 출연), 정영주, 이지하가 출연하는 올해 공연 역시 시종 유쾌한 웃음과 공감의 눈물이 끊이지 않는다. 세 배우는 토크쇼 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사연에 따라 산부인과 의사, ‘털’이 많아 고민인 중년 여성, 남편에게 끔찍한 폭행을 당하는 아내, 그리고 ‘버자이너’(여성 성기) 자체 등으로 변신한다. “정신 나간 여자들이 성담론을 하는 거라는 오해가 아직도 있어요.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성담론이기에 앞서서, 인간에 대한 이야기예요. 어떤 사실주의 연극의 인물들보다 캐릭터들이 각이 있고 사실적이죠.”(이지나) 이번 공연에는 종종 ‘깜짝 게스트’가 출연한다. 연극, 뮤지컬, 영화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객석에 앉아 있다 공연 중간 무대 위로 불려 나와 세 여자와 이야기를 나눈다. 서주희, 조정석, 송용진 등이 출연했고, 남은 공연에서도 스타들을 만날 수 있다. “송용진은 노래까지 만들어와서 부르고, 난리가 났었어요. 너무 재밌었죠. 공연 시작 전에 공연장에 그 노래를 틀어놓을까 생각중이에요.”(이유리) “정석이는, 뒤풀이할 때 ‘더 이야기하고 싶은데 왜 막았냐’며 아쉬워하더라니까. 배우들이 처음엔 쑥스러워하다가, 할 말이 많아지는 거예요.”(이지나) 배우들은 특히 성범죄의 극악함과 낮은 형량에 대해 분노의 목소리를 높인다고 한다. “우리, 다음 공연 때는 레즈비언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뤄볼까? 아니면 분위기를 좀더 세게 가 볼까?”라며 벌써 다음 공연 구상에 머리를 맞대는 두 사람. 그들과 함께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진화하고 있다. 박보미 기자 bom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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