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1.12.25 20:13
수정 : 2011.12.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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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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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집 낸 루시드폴
슬럼프·실연·자괴감의 아픔
내면 향한 곡들로 어루만져
삼바·쿠바 등 월드뮤직 접목
“4집과 달리 마음이 편해요”
꼭 2년 전 이맘때, 루시드폴(오른쪽 사진)이 발표한 4집 <레미제라블>은 여러모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스위스에서 박사 후 과정을 준비하다 돌연 전업 음악인의 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고국에 돌아와 발표한 앨범이었다. 4집은 2만장 넘게 팔리며 자신의 앨범 중 가장 높은 판매고를 기록했다. 그는 교육방송 라디오 <세계음악기행> 디제이를 맡았고, 한국방송 음악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도 고정 출연했다. 사랑하는 사람도 만났다.
지난 5월께 루시드폴은 라디오와 텔레비전 방송을 그만뒀다. 적어도 2년에 앨범 한장씩 내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곡은 쉽사리 써지지 않았다. ‘내가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자괴감이 커져만 갔다. 설상가상 실연의 아픔이 그를 짓눌렀다. 아버지는 병상에 누웠다. 지난여름은 그에게 고통의 계절로 다가왔다.
집에 틀어박혀 꼼짝도 않고 곡을 쓰기 시작했다. 음악에 묻혀 아픔을 잊어갔다. 그렇게 한두달 새 8곡이 만들어졌다. 4집의 가진 것 없고 외로운 이들을 위로하는 노래들과 달리 신곡들이 향한 곳은 그 자신의 내면이었다.
“나를 흔들리게 하는 건 내 몸의 무게.”(‘외줄 타기’) “그래, 나는 약해졌는지 몰라. 하지만 견디다 보면 여름은 다시 올 테고, 겨울엔 눈이 올 테고, 나는 다시 빛날 수 있겠지.”(‘그리고 눈이 내린다’) “안녕, 안녕, 아름다운 날들… 안녕, 안녕, 참 고마웠다고, 사랑했다고.”(‘여름의 꽃’)
루시드폴이 이번에 발표한 5집 <아름다운 날들>에선 편곡의 변화도 엿보인다. 오래전부터 그토록 좋아하던 브라질 음악 삼바를 ‘그리고 눈이 내린다’에서 처음 시도했고, 공동 타이틀곡 ‘어부가’에는 쿠바 리듬을 실었다. ‘불’의 후반부에선 스페인 전통음악 플라멩코의 느낌이 묻어난다.
“1년 반 동안 <세계음악기행> 디제이를 하면서 원래 좋아하던 브라질 음악 말고 다른 월드뮤직에 대해서도 많이 배우게 됐어요. 재즈 피아니스트 조윤성씨를 만나 음악적 교감을 나눈 것도 큰 도움이 됐죠. 월드뮤직 느낌의 3곡과 ‘외로운 당신’까지 모두 4곡을 함께 작업했어요.”
한국 재즈 1세대 드러머 조상국의 아들 조윤성은 얼마 전 재즈 보컬리스트 웅산의 앨범에도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하는 등 최근 가장 주목받는 연주자다. 루시드폴은 “윤성씨와의 작업이 만족스러워 내년에도 공연이든 앨범이든 같이 뭔가를 해보려고 준비중”이라고 귀띔했다.
그가 데뷔 시절 결성한 모던록 밴드 미선이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의 불빛’도 인상적인 곡이다. 모던록 밴드 마이앤트메리의 한진영(베이스)·박정준(드럼)과 인디신에서 명성이 드높은 키보디스트 고경천이 참여해 날것 그대로의 거친 질감이 살아있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루시드폴은 “기회가 되면 다시 밴드를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했다.
“잘돼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던 4집과 달리 이번 5집은 마음이 편해요. 많이들 좋아해주시면 고맙겠지만,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 최선을 다했기에 만족합니다.”
루시드폴은 29~31일 서울 연세대 백주년기념관에서 5집 발매 기념 공연을 한다. 1544-1555.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안테나뮤직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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