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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1.31 20:39 수정 : 2012.01.31 20:39

[주목! 이 작품] 이재갑의 사진 ‘시계 11:02’

1945년 8월9일 오전 11시2분 일본 나가사키시 우라카미성당 위로 파란 하늘이 하얗게 빛났다.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르고 시곗바늘이 멈췄다. 미국이 일본 히로시마에 인류 최초의 핵무기 리틀 보이를 투하한 사흘 뒤 두번째로 팻 맨을 떨어뜨린 것이다. 원자폭탄 팻 맨은 폭발과 함께 약 3초 동안 지상을 태웠다. 원자폭탄이 투하된 그라운드 제로는 지면 온도가 3000도에서 4000도였다. 엄청난 고열은 모든 것을 삼켰다.

서울 견지동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에서 만난 컬러 사진 <시계 11:02>(사진)은 원폭의 순간에 멈춰버린 나가사키의 원목 괘종시계를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이재갑(46)씨가 촬영한 것이다. 그가 일제 강점기에 후쿠오카, 나가사키, 히로시마, 오키나와 등지에 강제 징용되어 제철소와 지하터널, 탄광, 조선소, 댐 등에서 노동착취와 희생을 당한 조선인의 흔적을 담은 전시회 ‘상처 위로 핀 풀꽃’에 출품한 작품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멈춰선 시계 뒤로 작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그는 “2008년 7월 나가사키의 원폭자료관에서 이 사진을 찍을 때 섬뜩한 공포를 느꼈다”고 말했다.

“전시실에 들어서자 갑자기 어두워지면서 적막 속에서 괘종시계의 초침 소리가 똑딱똑딱하고 들렸는데 굉장히 두렵더군요. 괘종시계의 11시2분은 일본 패망과 조선 해방의 운명을 결정짓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수많은 조선인들이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참상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카메라의 초점을 시계가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제 그림자, 곧 제가 느꼈던 공포에 맞췄습니다.”

그는 “그 당시에 괘종시계 뒤에 투영된 제 그림자를 보면서 고통이 대물림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또 원폭자료관에서 전시된 일본의 반핵 평화주의 화가 마루키 부부의 15부 연작 ‘원폭의 그림’ 중 <까마귀>(1972년)를 보면서도 참을 수 없는 슬픔과 함께 분노를 느꼈다고 한다. 이 그림은 1945년 8월의 폭염 속에서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수습되지 않고 썩어가는 시신에 까마귀 떼가 달려드는 참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재갑 작가는 1996년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조선인 강제 노동자들의 고통스러운 삶 등을 카메라에 담아왔다. 지난해에는 그 기록을 모아 사진집 겸 보고서인 <한국사 100년의 기억을 찾아 일본을 걷다>(살림출판사)를 냈다. 전시는 오는 10일까지. (02)735-5811~2.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평화박물관 스페이스99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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