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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2.02 20:32 수정 : 2012.02.02 22:15

상임지휘자 함신익씨가 케이비에스교향악단을 지휘하고 있다.

법인화 갈등·지휘자 불신, 오디션으로 터졌다

요즘 클래식계에서는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과 더불어 국내 양대 오케스트라인 한국방송 산하 케이비에스(KBS)교향악단을 놓고 뒷말이 무성하다. 지난 2010년 취임한 함신익 상임지휘자, 사쪽과 단원들 사이에 갈등이 커지면서 단원들이 지난해 10월 정식 연주를 거부하는가 하면, 연주력 평가 오디션에도 나오지 않는 등 악단 운영이 파행을 면치 못하고 있다. 맞수 서울시향보다 관객 동원력은 물론 연주력에서도 크게 밀린다는 질타도 잇따른다. 국내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이 교향악단에서 최근 수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한국방송은 지난달 25∼27일 케이비에스교향악단 단원들의 기량 평가를 위해 1981년 출범 이래 처음 단원 전체 오디션을 진행했다. 노사 합의에 따라 전체 단원 91명 중 신입단원과 부문별 수석, 정년퇴임을 앞둔 단원을 제외한 77명의 오디션 평가를 시도했다. 그러나 결과는 한 외국인 단원을 포함해 8명만 참여했을 뿐이다. 사실상 집단거부였다. 단원들은 “사쪽과 함 지휘자가 오디션을 빌미로 통제를 강화하려고 한다”고 반발했고, 사쪽은 “단원 대표가 참석한 노사 합의마저 어긴 것은 무책임한 집단이기주의”라고 맞받았다. 김인규 사장은 오디션을 거부한 단원들을 중징계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디션 거부가 본질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곪아온 불신의 상처가 오디션을 계기로 터진 겁니다.” 악단의 내홍을 지켜본 한 원로 음악인의 진단처럼, 이 오케스트라의 침체와 내부 갈등은 오랜 뿌리가 있고, 쉽게 해결할 성격이 아니라는 게 음악계 쪽 이야기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2005년 교향악단 법인화 추진 문제로 빚어진 사쪽과 단원들 사이의 불신이 함신익 지휘자 임명을 계기로 극도로 악화되면서 오디션·공연 거부 등의 악재로 터져나왔다고 지적한다.

현재 단원들은 함 지휘자 연임 반대와 차기 지휘자 조기 선정 등을 주장하고 있다. 한 단원은 “함씨가 2006년 대전시향 상임지휘자 시절에도 자격 시비와 단원들과의 잦은 마찰로 문제를 일으켰다”며 “실력 없는 지휘자에게 악단의 운명을 맡길 수 없다”고 했다. 일부 음악인들도 이런 주장을 수긍하는 편이다. 2010년 함신익 상임지휘자가 밀실에서 선정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기 때문이다. 김인규 한국방송 사장 시절인 당시 사쪽에서 주도한 선정위원회는 단원들이나 시청자를 대변하기에는 극히 제한적이며, 3자가 보기에도 ‘문외한’들이 다수 포함돼 공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 7인 선정위원은 한국방송 대표 2인, 음악계 대표 2인, 악단 대표 2인, 주돈식 전 문화부 장관으로 구성됐다. 그나마 음악계 대표도 함씨와 가까운 음악계 원로 이아무개씨와 현역 성악가 김아무개 교수였다. 이런 배경 탓에 교향악단 대표였던 김복수 악장과 이철웅 수석단원은 선정위의 공정성에 반발해 사퇴하고 나머지 5인이 지휘자 선임을 최종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음악계에서는 사쪽인 한국방송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국방송 경영진이 악단의 내부 갈등을 해결하는 데 별다른 조정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사태가 악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방송의 한 관계자는 “경영진이 수신료 인상을 위해 정치권 로비에만 주력하다 보니 방송사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우선순위가 처지는 악단의 비전이나 투자 등 운영 개선책에 큰 관심이 없는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평론가이자 지휘자인 최영철(56)씨는 “한국방송이 첫 단추를 잘못 채웠다. 전세계에 문호를 개방해 실력이 검증된 지휘자를 찾으면 될 일을 자꾸 끌면서 단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반면 지휘자 함씨와 한국방송 쪽은 집단행동이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함 지휘자는 “일부 단원들이 지휘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금 악단을 정상에 올려놓기 위해 합심하는 것이 필요하며, 계약기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연임 거부를 내세워 집단행동을 일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주장했다. 한국방송 시청자사업부 관계자도 “오디션은 악단 연주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사가 합의했던 것”이라며 “단원들이 권리만 내세우고 공익단체 구성원의 임무에는 소홀하다”고 비판했다.

실제로 클래식계에서는 단원들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눈총도 쏟아지고 있다. 2005년 사쪽의 악단 법인화 추진에 반대하는 단원들이 노조와 함께 오랜 투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갈등이 장기화하면서 단원 사기가 저하되고, 연주력과 태도 등에서도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사쪽 정책에 동조하는 단원과 반대하는 단원들 사이에도 갈등이 생기면서 좋은 오케스트라 연주의 전제조건인 ‘인간적 화합’도 깨졌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오디션을 거부했던 한 단원은 “함 지휘자가 취임했을 때 반대하면서도 열심히 해보려 했지만, 일부 단원들이 연주·오디션 거부를 주도하며 자꾸 문제를 키우고 있다”며 “오디션을 받고 싶어도 ‘왕따’ 당할까 봐 참가하지 않았던 단원들이 꽤 많다”고 털어놓았다.

음악평론가 황지원씨는 “단원 역량에서 케이비에스교향악단은 국내 어디에도 뒤처지지 않는 만큼 구조적 문제에서 탈피해서 음악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며 “사쪽과 단원들의 감정싸움으로 비치게 하지 말고 문제점을 공론화시켜서 빨리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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