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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갈리트 란다우(43)의 <사해>(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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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탈미술관 ‘애프터워즈’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이 끊이지 않던 2002년 가자 지구(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운하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8년 동안 1만5천명의 아랍인과 이스라엘인들이 매달린 대형 프로젝트가 완성되자 가자 지구는 완전히 독립된 섬으로 변했고 전쟁은 사라졌다. 푸른 숲 우거지고 태양광·풍력 발전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이 친환경 섬에는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이 방문한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허구이다. 이스라엘 비디오작가 타미르 자도크(33)가 가자 지구에 운하가 건설된 가상 풍경을 설정해 만든 9분짜리 픽션영화 <가자 운하>(2010)는 미묘한 복선을 깐다. 언뜻 작품은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스가 이야기했던 ‘새로운 중동’의 비전에 입각해 글로벌 경제·관광프로젝트로 미래 평화모델을 제안하는 것처럼 읽힐 수 있다. 그러나 한 겹 벗겨서 보면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에 높이 8m, 총 700㎞에 이르는 분리 장벽을 세워 고립된 섬으로 만든 것을 연상하게 한다. 또 “모든 아랍인들을 바다에 던져 버린다”라는 이스라엘인 저변의 환상을 드러낸다. 그뿐 아니라 한국의 4대강 개발, 브라질 아마존댐 건설 등 세계 곳곳에서 최첨단 친환경의 구호를 내세워 자행되는 대규모 건설에 대한 풍자를 담고 있기도 하다. 서울 평창동 토탈미술관이 지난 6일부터 전관 전시중인 한-이스라엘 수교 50주년 기념 특별전 ‘애프터워즈’(그 후)는 지구촌 현실에 대한 젊은 비디오작가들의 신랄한 풍자와 재치가 넘치는 작품들로 채워졌다. 세계의 화약고 중동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이스라엘 작가 8명이 조국과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정치·경제·문화적인 위기를 바라보는 시각들을 읽어낼 수 있다. 한-이스라엘 수교50돌 특별전비디오작가들 독특한 상상력
중동위기 등 신랄한 현실풍자 샤르하르 마르쿠스(42)의 <프리즈>(아래 사진)를 보면 작가가 지구적 위기를 어떻게 바라보는지가 엿보인다. ‘얼다’ 또는 ‘냉동’이라는 뜻의 이 작품은 두 사람이 얼음으로 만든 커다란 체스 판 위에서 펼치는 우스꽝스러운 경기 대결을 담은 4분33초짜리 영상이다. 경기하는 동안 얼음으로 만든 흰색과 검정색 체스 말은 점점 녹아내린다. 더이상 경기가 진행되지 않을 즈음에는 체스 판이 온통 검붉은 물로 물든다. 말이 움직일 때마다 스티로폼 볼로 채워진 모래시계가 돌아가는데, 그 안에는 작가인 마르쿠스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간의 신 크로노스처럼 서 있다. 체스판 뒤쪽으로는 신화 속 빛의 아들과 어둠의 아들이 겨루는 종말의 장면을 기술한 사해두루마리를 보관한 이스라엘 박물관의 사해문서보관소가 보인다. 작가는 <프리즈>를 통해 오랜 역사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벌어진 적대적 관계를 유쾌하게 무장해제시킨다. 시갈리트 란다우(43)의 <사해>(2005·위)는 조형적인 미감이 뛰어난 작품이다. 그는 길이 250m 노끈에 수박 500개를 연결하여 지름 6m가 되도록 나선으로 감아 원형 뗏목을 만들었다. 알몸 여자를 태워 요르단·이스라엘 국경에 있는 소금 호수인 사해에 띄운 뒤 나선형의 수박들을 묶은 끈이 점점 풀리면서 물 위에서 녹색의 얇은 선이 되는 모습을 촬영했다. 온통 소금물인 죽음의 바다(사해) 위에 연약한 여자와 수박이 둥둥 떠 있다는 것 자체가 불안해 보인다. 수박은 서로 부딪혀서 깨어지기도 하는데 붉은 속살은 사회적 약자로서 겪는 여성의 상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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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르하르 마르쿠스(42)의 <프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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