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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2.05.03 20:26 수정 : 2012.05.03 20:26

사진가 노순택씨가 전남 화순 운주사에서 낮잠에 빠진 노인을 찍은 사진 <망각기계 #v-025>(108×108㎝). 새로운 세상을 기다리며 누워 있는 운주사의 와불(아래) 이미지와 묘하게 겹친다.

노순택 사진작가

노순택 사진전 ‘망각기계’

“그날을 기억한다는 것과
잊는다는 것은 무엇인지
오늘의 우리 마주하고파”

광주광역시에서 42㎞가량 떨어진 전남 화순 운주사는 ‘천불천탑’의 전설이 서린 곳이다. 그 옛날 권력의 횡포에 시달리던 민중들이 새로운 세상을 기원하며 하루 만에 천개의 불상과 탑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황석영씨는 소설 <장길산>에서 관군에 패한 주인공 장길산과 노비들의 미완의 혁명지로 운주사를 세상에 알렸다. 특히 절 왼편 산등성이에 누워 있는 12.7m, 10.3m 크기의 거대한 와불 한 쌍에는 “이 미륵님만 일으켜 세워 드리면 세상이 바뀐다”는 장길산의 상족하수(上足下首)의 개벽사상이 깃들어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노순택(41·사진)씨는 2007년 5월 늦봄 운주사에 갔다가 토끼풀이 피어 있는 들판에서 환갑 즈음의 한 남자가 모로 누워 낮잠에 빠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이 평화로워 보이기도 하고 어쩐지 안쓰럽기도 해서 몰래 카메라에 담아두었다. 그 뒤 우연히 필름을 정리하다 그 장면이 운주사 산기슭에서 담았던 와불과 이미지가 묘하게 겹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1980년 광주항쟁 이후에 수많은 유가족들이나 희생자의 친구들이 운주사에 와서 마음을 달랬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또 “그분들이 운주사를 찾는 까닭은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울분을 터트리고 싶은 마음, 위로받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운주사에서 문드러지고 목이 잘리고 부서진 채로 널브러져 있는 수많은 부처들이 광주항쟁 당시 금남로에서 스러졌던 많은 분들과 충분히 동일시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곁에 왔다 갔던 가족이나 친구들은 어쩌면 부처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구나 싶고요.”

노씨는 2005년부터 매달려온 ‘5월 광주’의 사진작업 63점을 모아서 4일부터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 신관 1층과 지하 1~2층에서 개인전 ‘망각기계’를 연다. 전시는 5월 광주 당시 죽은 자와 살아남은 자, 5월 광주의 기념비적인 장소, 화순 운주사의 석불 등의 이미지들을 5가지 주제로 나누어 보여준다. 전시 제목을 ‘망각기계’로 붙인 까닭은 “오늘 한국사회에서 5월 광주를 기억한다는 것이 무엇이고, 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리고 “오월에 스러진 이들만을 보려던 게 아니라, 그들을 기억하고 망각하는 오늘의 우리와 마주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전시장 1층을 들어서면 ‘죽은’ 사진과 만난다. 옛 망월동 묘역에 놓여 있는 이름 모를 영정사진들의 풍경을 담아낸 작업이다. 죽은 이들의 살았을 적 모습을 담은 사진들은 오랜 세월 망월동 묘역에서 눈비를 맞고 햇볕과 서리를 견디다 자연스럽게 망가졌다. 심지어는 얼굴이 사라지고 유리액자만 남은 것도 있다. 그는 “일그러지고 녹아내리는 것은 저 사진들만이 아니라 산 자들의 삶 자체”라고 말했다.

망각의 시간을 겪어온 영정사진들은 전시장 지하 2층에서 운주사의 석불 사진들과 나란히 전시되어 또다른 세상을 함께 꿈꾼다.

살아남은 자들의 풍경을 담은 ‘죽지 않은’ 사진들은 어떤 블랙 코미디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롯해 5월 광주의 반석 위에 정치권력을 쌓았던 이들의 모습과 5월 광주에 관한 뉴스와 이미지를 생산하는 미디어의 풍경, 관광상품화된 5월 광주의 체험행사 모습 등이 왠지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그는 최근 일본 시인 다나베 아쓰미와의 대담에서 5월 광주가 30여년의 세월이 흘렀고, 특별법이 만들어져 ‘국가의 승인’과 ‘공식 역사’가 되었지만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무언가 잊히고 있다는 생각, 여전히 왜곡되고 있다는 생각, 알맹이는 간데없고 껍데기만 남았다는 생각, 이런 복잡한 생각들이 오늘의 5월 광주를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머릿속 한편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는 5월광주에 대한 망각을 넘어 왜곡과 훼손이 진행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명박 정부 들어 더욱 빈번해진 대북삐라(유인물) 살포 현장에서 담아낸, ‘광주폭동의 진상을 밝힌다’, ‘5·18의 화려한 사기극을 고발한다’는 따위의 자극적인 유인물을 사진으로 고발한다. 6월10일까지. (02)745-1722.

글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이정아 기자 lee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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