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06.26 20:10
수정 : 2012.06.2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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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동물 없는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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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동물 없는 연극’
남자2: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더니 말하기를, 텔레비전에서 대통령이 하는 말을 듣고는 그를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 것은 완전 정상이래.”
남자1: “그런데 자네는 그 사람을 죽이고 싶은 게 아니라 강, 강간하고 싶은 거잖아.”
남자2: “그 의사는 내가 너무 착해서 그렇다는 거야. 다들 대통령을 죽이고 싶어 하는데 말이야.”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지난 20일부터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국내 초연되고 있는 연극 <동물 없는 연극>의 한 에피소드 ‘유에스에이’(USA)의 장면이다. 남자2는 친한 친구인 남자1이 자신을 ‘밥’이란 애칭으로 부르는 걸 끔찍이 싫어한다. “밥” 소리만 들어도 미칠 것만 같단다. 그런데도 자꾸만 “밥~”, “밥~” 하고 불러대자, 그는 자신의 집안에는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장군이던, 증조 작은할아버지 밥이 링컨 대통령과 언쟁 끝에 그를 강간했던 부끄러운 비밀이 있다고 주장한다. 이 남자 자신은 이를 사실로 믿고 있다. 그런데 자신이 “하필이면 조상 밥의 지랄 맞은 유전자”를 타고났는지 대통령을 보면 그런 충동이 인다는 것이다.
프랑스 극작가 장미셸 리브의 희곡을 극단 산수유가 무대에 올린 연극 <동물 없는 연극>은 1시간40분 내내 웃음보따리를 풀어낸다. 그러나 그 웃음의 여운에는 풍자의 가시가 뒤따른다. 7개 에피소드로 이뤄진 이 연극은 아들 조지 부시가 미국 대통령에 취임한 2001년에 프랑스에서 초연되었다. ‘유에스에이’ 에피소드는 두 남자가 진지하게 주고받는 허무맹랑한 대화를 통해 대통령 권력, 나아가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초강대국 미국을 조롱한다.
이 연극은 유명 작가인 형과 바보이면서도 형보다 더 똑똑해지고 싶은 동생의 대화(‘평등·박애’), 한 남자가 처제가 출연하는 연극을 본 뒤 “브라보” 하고 칭찬해달라는 아내의 부탁을 끈질기게 거부하다 벌어지는 부부싸움(‘비극’) 등 에피소드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작은 일들을 짐짓 진지한 척 뒤집어 보여줌으로써 폭소를 자아낸다. 관객들은 한바탕 공감의 웃음 뒤에 자신 안에 있는 속물근성과 비겁함, 근거없는 종교적 편협, 지적 허영심 등을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경남 창녕군 길곡면> <바람이 분다> 같은 작품으로 연출력을 인정받은 젊은 여성 연출가 류주연(41)씨의 작품이다. 극장 중앙의 간이의자에 관객들을 앉히고 객석 네 귀퉁이를 무대로 활용해 집중도를 높였다. 7월1일까지. (02)3668-0007.
정상영 기자
chung@hani.co.kr, 사진 극단 산수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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