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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뮤직페스티벌’(U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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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미 <한겨레>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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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하이힐로 꽃단장
나중에 보니 운동화가 최고 탁 트인 운동장에 가슴이 뻥
남의 춤 복사·사정없는 헤드뱅잉…
정체 모를 춤 추며 자유 만끽 ■ 시작 입방정 때문이었다. 하필이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을 ‘거대한 야외클럽’으로 만든다는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 축제 이야기가 나온 그 회의에서, “클럽에 한번도 가본 적 없다”란 말을 꺼낸 게 화근이었다. 스물 몇 해, 사이키 조명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삶이었다. 한번씩 ‘그 좋다는 클럽, 나이트’의 세계가 궁금할 때가 없진 않았지만, 그래도 춤을 쫓아다니는 건 철저히 남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절친들도 다 비슷한 샌님들, 우리끼리 맥주잔 부딪치며 실없는 농담으로 지새우는 밤으로도 행복했다. 그런데 춤을 추란다. 그것도 수만명이 모이는 야외무도장이란다. ‘가기 싫다’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다 뱉을 순 없었다. 그렇게 ‘난생처음 댄스클럽 체험기’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정해졌다. ■ 사전 준비, 글로 춤을 배우다 그날은 다가오고, 피할 도리가 없다. 갑자기 다리가 부러지거나 설사병에 걸리지 않는 이상, 가긴 가야 한다. 동행을 구했다. 여럿이 가야 ‘뻘쭘’하지 않단다. 노래방은 혼자 가도 재밌던데…. 대학 친구들에게 연락했다. 클럽 유경험자 2명과 나와 같은 초짜 1명이 섭외됐다. 그다음은 ‘뭘 입을까’가 고민이다. ‘불금’(불타는 금요일 밤)에 대한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주위엔 “헐벗고 가겠다”고 큰소리쳤지만, 사실은 틈만 나면 인터넷 검색창에 ‘클럽’을 검색했다. 클럽노래, 클럽춤, 클럽의상, 클럽녀(?)…. 블로그를 여행하며 세련된 ‘강남 스타일’과 편안한 ‘홍대 스타일’로 나뉜다는 의상을 공부했다. 힙합 음악을 선호한다는, 클럽 유경험자인 친구 1호는 “옷차림을 고민하는 것부터가 초보”라며 핀잔을 줬다. 3일, 그날이 왔다. 민소매 셔츠부터 아슬아슬한 미니스커트까지 옷을 한가득 꺼내놓고 결국 선택한 건 에이치(H)라인의 원피스, 용기 내어 한 곳엔 파격을 줬다. 블로그에서 배운 대로 검은색 아이라이너로 김연아처럼 눈꼬리를 길게 빼고, 펄이 들어간 아이섀도를 두껍게 발랐다. 올여름 야심차게 장만한 ‘잇 아이템’(=내가 원하던 바로 그 아이템)인 굽높이 10㎝ 분홍색 글리터(반짝이) 슈즈는 회심의 마무리였는데, 이 구두가 실수일 줄은 나중에야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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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트라뮤직페스티벌’(U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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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에 뜬 디제이 스타
“관객 반응에 소름 돋아” 리뷰 l UMF코리아 2012 미국에서 시작된 일렉트로닉 축제
아시아 첫무대 스크릴렉스 등 공연 주최 쪽도 “이렇게까지 성공적일 줄은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3~4일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 일대에서 열린 ‘울트라뮤직페스티벌(UMF) 코리아 2012’가 5만5000여명의 관객을 모으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1999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시작된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 축제인 유엠에프는 스페인·브라질 등 여러 나라로 뻗어나가며 한해 100만여명을 열광시키는 세계적 규모의 축제로 자리잡았다. 아시아에서 열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주최 쪽은 “목표치 5만명을 훌쩍 넘겼다”며 “일본·중국·필리핀 등지의 예매자도 15%에 이른다”고 전했다. 테이블당 6명 기준으로 술·음료 포함해 300만원짜리인 브이브이아이피(VVIP) 티켓 90장도 일찌감치 매진됐다고 한다. 가수 싸이·서인영·아이유, 연기자 공효진·정겨운·이천희 등 연예인도 많이 찾았다. 무대는 세 곳으로 나뉘어 펼쳐졌다. 주경기장의 ‘메인 스테이지’에는 세계 정상급 디제이들이 잇따라 올랐다. 첫날 세계 파티 음악계를 주름잡는 스티브 아오키가 신나는 음악으로 분위기를 달구자 관객들은 파도처럼 일렁이며 몸을 흔들었다. 관객의 물결 위로 사람이 탄 튜브 보트를 띄우는 퍼포먼스도 선보였다. 첫날 헤드라이너(마지막 출연자) 스크릴렉스가 등장하자 관객들은 더 크게 환호했다. 요즘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일렉트로닉 하위장르인 덥스텝 음악의 천재라 불리는 스크릴렉스는 올해 초 그래미상 3개 부문을 수상한 스타 디제이다. 그가 선뵌 음악은 다소 묵직하고 실험적이었는데도 관객들은 두 손을 치켜들고 열광했다. 스크릴렉스는 공연 뒤 트위터를 통해 “내가 했던 공연 중 톱 파이브 안에 꼽을 정도로 강렬했다”며 “공연 내내 소름 돋을 정도로 관객 반응이 열광적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둘쨋날 한류스타 장근석이 디제이로 깜짝 변신했다. 동료들과 ‘팀 에이치’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그는 태극기를 흔들며 뛰어다니다가 관객들에게 태극기를 나눠주기도 했다. 이어 트랜스 음악의 대부로 네덜란드 왕실 기사 작위까지 받은 티에스토가 헤드라이너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사랑, 음악, 놀자, 높이 뛰어’ 등 한글 글귀를 디제이 박스 전광판에 내보내며 화려한 음악으로 열대야를 수놓았다. 14~15일 슈퍼소닉 페스티벌로 한국을 찾는 가수 고티에의 히트곡 ‘섬바디 댓 아이 유스드 투 노’를 리믹스하기도 했다. 보조경기장의 ‘라이브 스테이지’에선 다른 장르의 음악 공연도 펼쳐졌다. 록밴드 크라잉넛과 톡식의 무대 때는 록 페스티벌 분위기가 났다. 클래지콰이의 디제이 클래지는 원조 댄싱퀸 김완선과 깜짝 협업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테크노 음악의 황제 칼 콕스는 둘쨋날 자신만을 위해 마련한 공간인 ‘칼 콕스 아레나’에서 동료들과 특별무대를 꾸렸다. 관객들의 독특한 축제 복장도 눈길을 끌었다. 캄캄한 밤에도 선글라스는 기본이었고, 푸른 수술복과 하얀 간호사복을 입고 온 이들도 있었다. 스파이더맨·배트맨·처녀귀신 따위로 분장한 이들은 다른 관객들과 즐겁게 사진을 찍었다.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있는 탓에 모든 공연은 자정에 마무리됐다. 여흥이 가시지 않은 이들은 근처 클럽으로 향하는 전세버스에 올랐다. 몇몇 클럽이 유엠에프 관객들을 대상으로 50% 깎아주는 이벤트를 마련한 것이다. 유엠에프는 한국 공연 이후 폴란드·스페인·브라질 등에서 축제를 이어간다. 한국 공연 주최사 쪽은 “첫 회를 성공적으로 치른 만큼 내년에도 비슷한 시기에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사진 유시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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