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2.10.31 17:51
수정 : 2012.10.31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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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선 버터플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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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만에 정규앨범 낸 3호선 버터플라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다 잠에서 깼다. 지금 이곳은 꿈인가, 현실인가. 내가 나비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내 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인디 록밴드 ‘3호선 버터플라이’가 8년 만에 발표한 정규 앨범 <드림토크>를 듣고 있으면 장자의 호접몽 이야기가 떠오른다. 제목이 암시하듯 앨범은 시종일관 흐릿하고 몽롱한 기운으로 꿈과 현실의 경계를 뭉갠다. 그 모호함 속에서 결성 14년차 밴드의 무르익은 내공이 낭중지추처럼 빛을 발한다. 평단에서 강력한 ‘올해의 앨범’ 후보라는 평가들이 줄을 잇는 이유다.
“스모우크 핫 커피 리필, 달이 뜨지 않고 니가 뜨는 밤”이라는 노랫말을 무한반복하는 첫 곡 ‘스모우크핫커피리필’은 최면술 주문처럼 듣는 이를 꿈의 세계로 안내한다. 노이즈(소음)를 양념처럼 뿌린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넘실댄다. 남상아(보컬)·성기완(기타)·김남윤(베이스)·서현정(드럼) 네 멤버가 각자 꾼 꿈을 한데 뒤섞어 만들었다는 두 번째 곡 ‘꿈속으로’는 이상한 나라를 헤매는 앨리스의 여행기 같다.
타이틀곡은 여섯 번째 곡 ‘헤어지는 날 바로 오늘’이다. 이들이 3년 전 발표한 미니앨범(EP) 타이틀곡 ‘깊은 밤 안개 속’의 맥을 잇는 감성 발라드다. 잔잔하게 흐르다 중반 이후 휘몰아치는 대목에선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지난 19일 밴드 작업실에서 만난 서현정은 “개인적으로 발라드를 좋아하는데, 이 곡은 드럼 연주가 가장 힘든 발라드”라고 말했다.
앨범의 백미로 꼽을 만한 ‘쿠쿠루쿠쿠 비둘기’는 멕시코 작곡가 토마스 멘데스가 1950년대에 만든 곡 ‘쿠쿠루쿠쿠 팔로마’를 개사해 부른 것이다. 세상을 떠난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잊지 못해 비둘기가 되어 창가로 날아와 “쿠쿠루쿠쿠” 운다는 슬픈 내용의 노래다. 브라질의 전설적 가수 카에타노 벨로주가 부른 버전이 가장 유명한데, 3호선 버터플라이 버전은 또다른 매력을 자아낸다.
밴드 리더인 성기완은 이 곡을 앨범에서 가장 애착 가는 곡으로 꼽으면서 “혼자 솔로 공연을 할 때 가끔씩 불렀던 노래인데, 상아 목소리로 부르면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앨범에 넣게 됐다”고 설명했다. 남상아는 “벨로주의 원곡이 워낙 좋기 때문에 이 노래를 부를지 말지 망설였다”며 수줍게 웃었다.
비둘기 울음 소리가 잦아들 즈음 오버랩되는 파도 소리로 시작하는 ‘제주바람 20110807’은 앨범에서 가장 실험적인 곡이다. 지난해 8월7일 제주도에 공연하러 갔다가 태풍 ‘무이파’로 숙소에 묶여 있을 때 김남윤이 녹음한 바람 소리를 재료 삼아 만든 일종의 ‘사운드 아트’다. 태풍이 덮치는 순간은 기타 노이즈로 표현했다. 8분여에 이르는 곡을 다 듣고 나면 태풍을 온몸으로 겪고 난 것처럼 노곤함과 안도감이 동시에 밀려든다.
“‘제주바람…’은 가장 현실의 노래인데, 오히려 가장 꿈같은 곡으로 느껴져요. 요즘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자처럼 만들어지는 아이돌 음악들이 듣기엔 좋으면서도 한편으로 답답하고 오히려 꿈같지 않게 느껴지는 것과 대비되는 것 같아요.”(성기완)
보통 음향 엔지니어의 몫인 앨범 믹싱(각 소리 요소를 합치고 균형을 잡는 작업)과 마스터링(최종적으로 음원을 정교하게 다듬는 작업)까지 손수 해낸 김남윤은 “일상의 소리와 기묘한 노이즈가 음악과 공존하는 순간의 미학을 담으려 했다”고 말했다.
3호선 버터플라이는 지난 13일 새 앨범 발매 기념 공연을 마친 데 이어, 오는 9일 서울 홍대앞 복합문화공간 무대륙과 12월16일 홍대앞 공연장 벨로주에서 공연을 할 계획이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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