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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0시가 넘은 겨울밤. 2014년 2월 일본 도쿄에는 많은 눈이 내렸고 매우 추웠다. 그 밤 작은 공장에서 한 세공인이 반지에 보석을 고정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의 손에 한국에 두고 온 식구들의 생계가 달려 있다. 책상 앞에 붙어 있는 사진 속의 그의 부인과 자녀들 그리고 그는 무척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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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광 ‘일본 in 아리랑별곡’ 사진전
2013년 ‘터미널블루스’로 최민식 사진상 특별상 부문에서 장려상을 받았던 사진가 손대광(42)씨가 오는 12월12일부터 부산 해운대 문화복합센터에서 ‘일본 인(in) 아리랑별곡’(부제-지치지 않는 희망) 사진전을 연다. 같은 이름의 사진집도 전시 개막에 맞춰 출간될 예정이다.
‘일본 인(in) 아리랑별곡’은 일본 도쿄 귀금속 세공업거리인 오카치마치에 집단을 이루어 삶의 터전으로 삼고 30년 넘게 귀금속 세공을 업으로 꾸준히 한길을 걸어가는 한국인 귀금속 세공전문가들의 삶의 애환과 희로애락, 그리고 지치지 않는 희망에 관한 포토스토리다. 전시를 앞두고 손대광씨가 미공개 상태의 글과 사진을 <한겨레>에 보내왔다.
1세대 도쿄 오카치마치에 집단 이뤄“한인 손 거치지 않는 귀금속 없다”
지진·한일관계 경색으로 힘든 시기
늘 그랬듯이 “희망은 지치지 않는다” 현재 일본 시장에서 제작되는 귀금속 제품은 재일한국인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일본 현지의 반응이다. 재일한국인 세공전문가들은 기술이 좋고 손이 빨라서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밀기술에서 세계 최첨단을 자랑하는 일본에서 한국인들의 손기술이 인정받고 있다는 뜻인데 1980년대 초반에 건너가기 시작한 한국 세공인들이 지난 30여년간 눈물과 땀으로 쌓아 만든 성취다. 그 시작이 순탄했을 리가 없다. 초기엔 한국인에 대한 인지도와 대우가 모두 좋지 않았고 작업환경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열악했다는 것이 오카치마치 1세대들의 한결같은 회고다. 공장에서 먹고 자면서 밤을 새우는 것은 기본이고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일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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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부안 출신인 배태수(45)씨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16살에 전남 익산 코리아다이아몬드 학교에 입학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1994년에 일본으로 왔다. 성실하고 우직하게 오로지 한길만 보고 다이아몬드 커팅을 하고 있다. 현재 부인과 돌 지난 예쁜 아기와 함께 자신의 일에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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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웃는다. 박태수(63)씨의 눈에는, 그러나 눈물이 가득하다. 평생을 차가운 금속과 강철 같은 다이아몬드와 씨름하였던 그는 머리 위에서 비치는 한 조각 빛에 의지해 누군가의 손가락에 끼거나 목에 걸게 될 반지와 목걸이를 만든다. 그는 이제 도쿄 한복판에 ㈜남광이라는 건실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믿었던 사람에게 가슴에 대못이 박히고 한참 괴로워하다 속세를 벗어나 산으로 가려고 했던 박태수씨는 1985년 지인의 소개로 일본으로 건너왔다. 일본 적응이 힘들어 1996년 한국으로 와서 돌산을 매입하여 건축자재용 석재를 가공 판매하려고 했으나 아이엠에프의 충격으로 손을 놓았다. 1999년 다시 운명처럼 일본으로 돌아와 오늘에 이르렀다. 이제 그는 웃고 있다. 반지에 새겨진 문양처럼 자신의 얼굴 가득히 일평생의 굴곡진 사연을 조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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