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무가 스티븐 페트로니오 내한 공연
제8회 서울세계무용축제(SIDance)에 참가하는 미국의 유명 안무가 스티븐 페트로니오(Stephen Petronio)가 공연(30일 오후 8시/10월 1일 오후 4시,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을 앞두고 인터뷰를 가졌다. 프로그램은 '비틀린 도시(City of Twist)' '상처입은 남자(Broken Man)' '라레뉴(Lareigne)' 세 편. '베를린 천사의 시' 주제가를 부르고, 백남준의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 출연했던 로리 앤더슨의 음악, 첨단을 달리는 이미테이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의상만으로도 화제가 될만한 작품들이지만, 정작 안무가 자신은 더 유명하고 더 끼가 넘치는 인물이다. '배드 보이' '울트라 슈퍼 모던' 등의 별명이 그의 개성을 대변한다. 그는 루 리드, 오노 요코, 신디 셔먼, 마놀로 등 이 시대 최고의 재능과 개성을 과시하는 타분야 예술가들과 즐겨 협업하고 있으며, '격정을 안무하되 논리가 정연하고, 자칫 무모해 보이는 동작들로 가득하지만 촘촘하게 짜여진 형식적 구조를 내포'한 작품들로 국제 유수 축제 및 극장들의 초청을 끊임없이 받고 있다. --한국은 첫 방문인가? ▲그렇다. 한국 관객을 만나는 것이 처음이라 우리 공연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18세에 무용을 시작했다면 꽤 늦은 편인데,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나? ▲원래 전공은 약학이었다. 부담없는 마음으로 무용 과목을 들으면서 갑자기 내 몸에 대해 느끼기 시작했다. 몸이 하나의 잘 짜여진 건축처럼 느껴졌고, 몸으로 무언가 창조적인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가족의 반대는 없었는지? ▲아버지는 트럭 운전사였는데 내가 춤을 추겠다니까 좋다며 열심히 하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좀 달랐다. 내가 우리 가족 가운데 처음 대학을 간 사람이었으므로 세속적 성공에 대한 기대가 크셨다. --서울 공연 작품에 대해 소개해 달라. ▲이 세 작품을 고른 이유는 내 안무의 각각 다른 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라레뉴'(1995년. 안무가는 '로레인'으로 발음)는 내 어머니의 이름에서 따온 제목이다. 당시 내가 안무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은 감정적인 내용이 아니라 춤의 속도, 구조, 형태였다. 하나의 건물을 짓듯 완벽한 형상을 이루는 데 중점을 둔 작품이다. '상처입은 남자'(2002년)는 개인적 경험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지난 2000년초 택시 문을 열다가 발을 헛디뎌 다리가 부러졌다. 다시는 춤을 출 수 없을 거라는 의사의 말을 듣고 완전한 절망상태에 빠졌는데, 다행히도 1년 후 회복이 됐다. 그 때 내 자신을 위한 안무를 하고 싶었다. 이제 더 이상 젊지도 않고 희망도 없는 무용수의 초상이랄까. 그렇다고 너무 슬픈 건 아니고… '비틀린 도시'(2002년)는 9.11 후에 만들었다. 9.11 사태가 일어났을 때 나는 영국에 있었고, 뉴욕에는 내 딸과 (남자)애인이 있었다. 뉴욕에서 일어나는 일을 다른 곳에 앉아 지켜보기만 한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로리 앤더슨을 포함해 이 작품을 만든 사람들은 모두가 세계무역센터 근처 14번가 주민들이다. 그곳에 살고 있는 우리가 모여 그곳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무언가 보여준다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왜 '배드 보이(Bad Boy)'로 불리게 됐는지? ▲기자들이 내 춤보다 사생활에 더 관심을 가져서 그런 것같다. 그래야 (기사가) 더 잘 팔릴 테니까. 80년대는 매우 보수적인 사회였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서는 안되는 것이 분명했고, 예술에 성적 정체성을 언급하는 건 거의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왜 안돼?'라고 나는 생각했고, 그런 이야기를 작품에서 많이 했다. 그래서 '배드 보이'가 됐다. --양팔에 특이한 문신이 있는데. ▲오른팔 문신은 용이 불타는 여의주를 향하고 있다. 47세 생일에 새긴 건데 용이 보호해준다는 의미이고, 왼팔의 문신은 그리스 철학자의 '나는 이제 사랑이 무엇인지 안다'는 말이다. 애인과 만난 지 5년 째 되는 기념일에 한 것이다. 애인은 똑같은 문구를 가슴에 새겼다. --그래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됐는가? ▲표현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 안다. --요즘 미국 무용계의 상황은 어떤가? ▲지원이 많이 줄었다. 우리 무용단에 대해 성공적이라고 말하는데 이 정도로 유지할 수 있는 것도 순회공연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우리 무용수들은 모두 은행이나 식당에서 일하는 등 다른 직업을 갖고 있다. 우리는 건강보험도 없고, 생활이 불안정하다. 우리가 이 일을 하는 건 춤을 사랑해서이며, 다른 선택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장르 예술가들과 공동작업을 자주 하는데, 특별히 이유가 있는가? ▲좋은 춤은 다른 장르들과 합쳐야 한다. 춤 자체만으로는 고립되기 쉽다고 생각한다. 또한 춤을 통해 다른 장르들을 연결할 수도 있다. 나는 관객에게 가급적 많은 볼거리를 주고 싶다. 그래서 관객이 이쪽이든 저쪽이든 볼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게 말이다. --앞으로 계획은? ▲내년 4월 초연 예정으로 'Bloom'이라는 작품을 만드는 중이다. 사춘기에 대한 이야기인데 젊은 가수 40명이 함께 노래할 예정이다. 아울러 뉴욕에 무용학교를 열 계획이다. 이름은 '동작과 예술학교'(School for Move & Arts)라고 정했는데 춤의 기술 뿐 아니라 춤을 즐기고 몸을 이용해 즐길 수 있는 것들을 가르칠 작정이다. 무용수만이 아닌 모두를 위한 학교로 만들겠다는 뜻이다. 입장권 2만, 4만, 6만원. ☎(02)3216-1185, www.sidance.org http://blog.yonhapnews.co.kr/star0201/ 이종호 기자 yesno@yna.co.kr (서울=연합뉴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