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운하 들머리에 ‘미끄러지는 혀’
지금 이탈리아의 고도 베네치아는 거대한 전시장이다. 세계 최고 미술잔치인 56회 베네치아 비엔날레가 9일 개막하면서 카스텔로 공원, 아르세날레(조선소)의 국가관, 본전시·특별전 뿐만 아니라 시내 곳곳의 건물에서 크고 작은 전시와 이벤트, 퍼포먼스가 한가득 펼쳐지고 있다. 최근 세계 각국이 문화국력 과시를 위해 경쟁적으로 전시관들을 시내에 유치해 빚어진 현상이다. 트렌드와 상상력이 엿보이는 몇몇 전시들을 간추려봤다.
대운하 들머리에 ‘미끄러지는 혀’
|
베트남 작가 담보가 전시공간과 차분하게 조응하는 절제된 전시를 펼친 덴마크관. 관객이 조각상과 마주보고 있다.
|
■ 한국 작가들 글로벌 파워 내뿜다 16~18세기 베네치아 사교장이었던 대운하 안쪽의 팔라초 콘타리니 폴리냑에서는 국제갤러리가 지원하고 벨기에보고시안 재단이 주최한 ‘단색화’전이 열리고 있다. 서구 컬렉터의 발길이 몰리는 이 전시에선 거장 김환기의 푸른 점화 작품을 필두로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정창섭, 권영우 등 70년대 이래 단색조회화 대가들의 대표작 70여점이 고풍스런 내부 장식과 어울려 고급스럽게 빛난다. 1층 현관 안쪽 공간에서는 이우환의 돌덩이 설치작품들이 존재감을 내뿜는다. 기획자 김승민씨가 소장작가 7팀과 리알토 근처 건물에 직접 꾸린 기획전 ‘베니스, 이상과 현실사이’는 알몸 여성이 소변 보는 장지아씨의 도발적인 사진들과 암흑공간에서 관객이 무용수의 보이지않는 움직임을 느끼게 만든 우디김의 설치퍼포먼스 등을 통해 주눅들지 않는 청년미술가들의 패기와 역량을 보여준다. 세르비아관에 내팽개쳐진 국기들
■ 카스텔로 공원의 독특한 국가관들 세르비아관은 20세기 존속했다 사라진 유고, 티벳 등 옛 국가들의 국기를 바닥에 내팽개쳐 국가 정체성에 대한 성찰을 끌어냈고, 스칸디나비아관은 퍼포먼스로 전시관 유리를 박살내버렸다. 전문가들 호평을 받은 미국관은 세계적인 작가 조안 조나스의 회고전으로, 생태·가족 등에 대한 심령적 인식을 보여주는 아이, 어른들의 가면 퍼포먼스 영상 등이 나왔다. 진짜 같은 슈퍼 매장을 꾸며 소비사회를 조명한 캐나다관도 화제였다. 하루 4번 배우들이 읽어주는 ‘자본론’
■ 퍼포먼스의 성찬 비엔날레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는 본전시에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다기한 퍼포먼스들을 차렸다. 본전시관 내부 붉은 무대에서는 영국 작가 아이작 줄리언의 연출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배우들이 하루 4차례씩 낭독하는 ‘자본론 오라토리오’를 펼치는 중이다. 아르세날레관에서는 아르헨티나 작가 리크리트 티라바니자가 벽돌을 찍어 10유로씩 파는 설치 퍼포먼스로 중국 노동자 지원금을 모금하고 있다. 쿠바 작가 타니아 브루게라의 설치 퍼포먼스는 긴 줄을 기다려야 한다. 검은 탄층으로 뒤덮인 방에서 통치자 카스트로 영상이 상영되는 가운데 알몸 배우들이 탄을 몸에 바르는 정치적 퍼포먼스를 거듭하며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베네치아/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