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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촌 거리에서 한 버스커(거리공연가)가 노래를 부르자,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공연을 지켜보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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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레드
노래할 자유와 노래를 듣지 않을 자유
내 노래와 네 노래 사이 공존의 간격
‘관’의 허가 넘어 ‘협동조합’의 자율로
거리문화로 자리잡기 위한 과정 자체가 문화
“거리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니까요.”
여기서 기타를 꺼내도 되냐는 질문에 아무르(25)씨는 이렇게 답했다. 지난 7월21일 서울 도림천 굴다리 밑 벤치. 맞은편에선 할머니 세 분과 할아버지 두 분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줄이 여러 번 끊긴 기타 목을 잡고 전날 술을 마셨다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느린 멜로디에 ‘헤어지지 말자’는 가사를 담은 노래가 시작됐다.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노래란다. “제 노래를 듣고 우는 사람도 많아요. 모르는 사람과도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게 노래라고 생각해요.” 아무르씨가 버스킹(busking·거리공연)을 하는 이유다. 할머니·할아버지들은 어느새 이야기를 멈추고 조그만 벤치 무대를 보고 계셨다. 누군가는 당신의 헤어짐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워워우, 소리 질러!” 옆 ‘얼음요새’
거리는 그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그의 것도 아니다. 그도 도림천이 아닌 곳에서는 불청객이었다. 특히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 근처 순대타운 가게 ‘준코’ 앞에서 버스킹을 할 때면 그렇다. 상가가 밀집해 있는 곳이다. 그만큼 지나가는 사람도 많아 노래를 하면 50~60명은 모여든다. 버스킹을 하면 두 번에 한 번꼴로 형광 조끼를 입은 경찰 2명이 다가온다. 음량을 낮추거나 다른 데서 하라고 권유한다.
노점상인이 다가와 장사에 방해되니 다른 곳으로 옮겨달라고 할 때도 있다. 그 자리에서는 “죄송하다”고 말하고 기타를 가방에 집어넣는다. 그리고 다음주에 또 간다. 그 자리에서 노래를 들어주는 사람이 유난히 많아서다. 어느 날은 경찰이 신분증을 달라고 했다. 고성방가로 벌금을 낼 수도 있으니 다음부턴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했다. 듣고 있는 사람이 많았지만 노래를 그만할 수밖에 없었다. 민원을 넣는 상인은 거리공연을 할 때 무서운 존재다.
요즘은 다른 버스커들도 무섭다. 서로 10m도 안 되는 거리에 앰프를 놓고 노래를 부른다. 언젠가 한강변 가로등 밑에서 노래할 때였다. 잔디밭에 노래를 듣는 사람들이 두세 명씩 흩어져 앉아 있었다. 깜깜해질 무렵, 가로등 바로 뒤 공터에서 2~3명의 남자가 마이크를 잡고 외쳤다. “워워우, 소리 질러!” 그가 잔잔하게 부르던 김필의 <얼음요새>는 노래방 MR 반주에 맞춰 부르는 소란의 <살 빼지 마요>에 묻혔다. 그도 의식하며 노랫소리를 높였다. 계단에 앉아 있던 커플은 자꾸 앞을 봤다 뒤를 봤다 했다. 잔디밭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자리를 떴다.
‘amour’라고 쓰인 ‘한강거리공연예술가’ 팻말이 바람에 날아갔다. 한강거리공연예술가 팻말은 한강에서 노래할 수 있는 일종의 자격증이다. 상반기·하반기로 나눠 서울시에서 모집하는 취지가 무색했다. 자격증이 없는 사람도 노래를 불렀다. 노래가 겹칠 정도로 공연이 많아지는 것에 대해 서울시에 항의도 해봤다. 답은 딱히 없었다. 공무원들이 일일이 관리하기에 한강은 너무 넓다.
거리에서 노래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생긴 일이다. 그는 왜 굳이 거리에서 노래를 할까.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요. 음악하는 사람들에게는 공연할 장소가 부족해요.” 노래할 기회는 종종 있었다. 청취자가 노래를 부르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3주 동안 1등을 놓치지 않기도 했다. 그는 힘들 때마다 노래를 했다. 친하다고 생각한 친구들에게서 따돌림당해 돌을 맞았을 때, 반대로 똑같은 짓을 누군가에게 했을 때, 상처를 노래하는 음악을 들으면 위로가 되기도 하고 반성이 되기도 했다. 그때부터 사람들을 치유하는 노래를 하고 싶었다. 치유의 경험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 거리로 나갔다.
“길거리라고 대충 하면 안 되지요”
거리의 사람들은 그의 노래에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고향인 경북 안동에서는 노래를 하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특히 아주머니들이 좋아했다. 커피나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도 하고, 식당에 들어와 밥을 먹고 가라고도 했다. 노래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 때 그는 “행복하다”고 말했다.
요즘 노래를 부르는 한강은 안동과 또 다른 느낌이다. 꼭 한 명씩 울었다. 잔디밭에 앉아 고개 숙이고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보면 미안하면서도 뿌듯하다. 그에게 거리는 유일한 무대다. 신림역 주변에서 자취하는 그는 공연장을 빌려 관객을 초대할 돈이 없다. 제한된 시간에 주어진 노래를 해야 하는 행사에서 노래하기도 마땅치 않다.
버스커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거리로 나선다. 올해 5월에 버스킹을 시작한 ‘호놀룰루 브라더스’는 “함께 놀고 싶어서” 버스킹을 한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 6명이 팀을 짰다. 서울 지하철 5호선 여의나루역 2번 출구 앞에서 강가 쪽으로 가는 길. 빨강·파랑·노랑·초록·남색의 옷을 입고 몽니의 <그대와 함께>를 부르며 기타를 치자 60~70명쯤 되는 사람들이 서서히 모여든다. 몇몇은 맨바닥에 앉아 몸을 좌우로 흔들기도 하고, 뒤에서 박수 치며 노래를 따라 부르던 남자는 “호” 하는 추임새를 넣기도 한다. 거리는 금세 작은 무대가 된다. 준비한 10곡을 모두 불렀지만 사람들이 앙코르를 외쳐서 10곡을 다시 불렀다. 노래는 밤 11시까지 계속됐다.
그들은 서로 마음에 드는 음악을 놓고 충분한 얘기를 나누며 선곡을 한다. 연습은 일주일에 2번씩 꾸준히 하고 있다. 각자 곡을 충분히 익힌 뒤 모여 합주를 하며 분위기를 잡아간다. ‘호놀룰루 브라더스’다운 맛을 내는 부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모두가 만족하는 곡이 나오면 공연 리스트에 포함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영향으로 기타를 들고 노래하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은데, 길거리라고 해서 대충 하는 버스커들을 보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부러 사람이 없는 곳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도 있다. 서울 인사동에서 노래를 부르던 제이킴(25)씨가 그렇다. 지난 7월9일 밤 9시30분 인사동, 상점이 모두 문을 닫고 거리에는 인적이 드물다. 그는 상점 앞 어둠 속에 묻혀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인도와 차도를 나누는 네모난 돌 위에 한두 사람이 앉아 있다. 노래를 듣는 건지, 누구를 기다리는 건지 모르겠다. 노부부가 잠깐 걸음을 멈춰 그를 지켜봤다. 그나마 보이는 몇몇 사람들은 빠른 걸음으로 그를 지나쳤다.
왜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어두운 거리에서 노래를 부를까. “싸우면서까지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아서요.” 낮에 노래를 부르면 상인들이 나와 화를 낸다. 입구를 막아서, 노랫소리 때문에 손님과 얘기를 할 수 없어서 그렇다. 그렇다고 홍익대 앞이나 한강을 가자니 10m도 안 되는 간격의 자리에서 버스커들이 서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싫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주고 싶으면서도, 사람들을 피해 노래를 부른다. 가끔 인사동에도 ‘전투적인’ 버스커들이 온다. 보통 누군가 노래하고 있으면 소리가 겹치지 않도록 좀 떨어진 곳에서 노래를 부르거나, 언제 끝나는지 물어보고 옆에서 기다린다. 전투적인 버스커는 아무 얘기도 없이 바로 옆 건물 맞은편에 장비를 풀었다. 노래가 섞여 소음이 될 것이 뻔했다. 그는 그날의 노래를 멈췄다.
면접을 봐야 들어갈 수 있는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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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거리 곳곳에서 버스커들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신촌 거리에서 노래를 끝낸 뒤 관객과 대화하는 지난이씨(왼쪽), 한강 다리 밑에서 공연 중인 4인조 밴드 악덕뮤지션(오른쪽 위), 한강 가로등 밑에서 노래하는 아무르씨(오른쪽 아래).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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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자율’을 노래해요 ‘자발성’과 ‘즐거움’. 한국버스킹협동조합의 무대가 보통의 행사무대와 다른 점이다. 부담이나 제약 없이 하고 싶은 공연을 관객들과 즐길 수 있게끔 하는 것이 협동조합의 취지다. 버스커들이 혼자서 민원 없이 거리공연을 할 수 있는 데는 많지 않다. 한국버스킹협동조합은 버스커들에게 거리에서 공연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 지금까지 모인 버스커들은 50여 팀 정도. 협동조합 온라인 카페에서 활동신청서를 다운받고 프로필과 공연영상 또는 연습영상을 첨부해 전자우편으로 보내면 내부 협의를 거친 뒤 회원으로 활동하게 된다. 어쿠스틱밴드, 힙합싱어송라이터, 마술, 비보이, 퍼포먼스팀 등 회원은 다양하다. 모여서 거리공연을 시작한 것은 2013년 5월이다. 노병화 대표, G댄스의 천미선 대표, 락킨코리아의 이화신 대표가 모여 ‘신촌버스커’라는 단체를 만들었다. 매주 토요일마다 공연을 했는데, 참가하는 사람이 점차 늘었다. 버스커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여건을 만들어주자는 생각에서 2014년 지방자치단체에 협동조합으로 등록했다. 지금은 신촌에 있는 플레이버스와 명물쉼터에서 공연을 하고 있지만 점차 무대를 늘릴 생각이다. 협동조합은 서대문구청과 상인회, 주민들과 다양한 소통의 시도를 펼쳐왔다. 조합에 소속된 버스커들은 안정적으로 공연을 할 수 있게 됐다. 회원들은 공연 에티켓을 지키려고 한다.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시간 동안 공연을 한다. 자신이 들려주고 싶은 노래를 들려준다는 점에서 자율성은 보장된다. 공연할 때 음량을 조절하는 것은 물론이다. 천미선 한국버스킹협동조합 이사는 ‘버스킹 에티켓’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주변 상가에 피해를 주지 않게 음량을 낮추고, 버스킹이 끝난 다음에는 자리를 정리하는 등 몇 가지 룰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협동조합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무대만 독차지하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화여대 앞이나 구석진 공간에서 하는 버스킹도 협동조합에서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려고 한다. 많은 버스커들과 올바른 버스킹 문화를 만들어보려는 시도다. 버스커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활동하려는 시도는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서울거리아티스트협동조합도 마찬가지다. 2012년 서울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이 없어지게 되자 버스커들이 협동조합을 결성해 스스로 운영하게 된 사례다. 청계천에서는 ‘청계천거리아티스트’라는 이름으로, 신촌에서는 ‘신촌거리아티스트’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가윤 한겨레21 교육연수생 ▶ <한겨레21>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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